와글와글
“황궁은 강기슭을 따라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세워져 있다. 휘황한 문체와 굉장한 규모는 사람의 재주나 힘으로 이러한 지경까지 이룰 수 있을까 하고 의심케 할 정도다. …황궁 문 앞에는 유명한 후례두익(厚禮斗翌) 선왕의 말 탄 동상을 세워 놓고 있는데 그의 남다른 위풍과 맹렬한 기상은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과 같다.”
프랑스 문화 심취,예술·학문 장려
포츠담 상수시궁에 와인셀러까지
140년 만에 고급와인 발견돼 화제
유길준 ‘서유견문’에도 황궁 등장
반려견 애지중지, 11마리와 합장
반면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은 거의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달랐다. 병정놀이 대신 책과 예술을 가까이하고 플루트 연주를 좋아했다. 그런 아들이 유약하다며 야단치거나 심지어 체벌도 서슴지 않았다. 이를 견디다 못한 왕세자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국으로 탈출을 시도했으나 그만 붙잡히고 만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만, 중신들의 만류로 감형하는 대신 탈출을 함께 모의한 친구가 사형당하는 끔찍한 광경을 지켜보게 만든다.
아버지는 근검 검약을 모토로 전통 독일적인 가치를 좋아했고 맥주를 즐겼지만,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은 평소 프랑스어로 말할 정도로 프랑스 문화에 심취한 군주였다. 심지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도서관 사서에게는 더 많은 급료를 줄 정도였다. 조국 프랑스를 떠나 유럽을 떠돌던 볼테르를 측근으로 불러 장시간 철학적 담론을 나눌 정도로 박식했고 프로급 플루티스트에 작곡까지 남겼다. 아버지가 즐기던 맥주가 아닌 포도주 그리고 커피를 애용하여 삭막했던 베를린과 포츠담에는 와인과 커피 문화, 정원문화 등 세련된 문화가 유입된다. 예술과 학문을 장려한 덕분에 베를린은 ‘북쪽의 아테네’란 별명을 얻기에 이른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재현, 그 꿈을 구현한 곳이 포츠담의 상수시궁전이다. 프랑스어로 ‘근심 없는’이란 뜻으로 본인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궁전의 이름도 지었다. 전쟁의 포연과 정치의 모략에서 벗어나 이제는 예술과 문화에 몰두하고 싶다는 인간적 소망이었다. 로코코 양식으로 지어진 상수시궁은 웅장하지 않은 대신 6단계의 멋진 테라스가 유명하다. 계단마다 만들어 놓은 169개의 유리격자 안에는 유럽 각지에서 가져 온 포도나무와 이국적 작물을 심었다. 그러나 포도의 수확량이 시원치 않자 1770년부터 1772년 사이에 상수시공원 안의 벨베데레 건물이 있는 클라우스베르크 남쪽 경사면을 아예 포도원으로 만들었다. 그의 사후에도 계속 포도원으로 운영되다가 2차대전이 끝나고 소련군의 지배하에 놓이면서 한동안 황폐해졌다가 최근 포도재배가 재개됐다. 이곳에서 수확된 포도주로 프리드리히 대왕 와인 축제가 개최되기도 한다. 대왕이 상수시궁전 동쪽 윙에 만들었던 와인셀러와 그곳에 넣어 두었던 고급와인들이 2004년, 140년 만에 발견돼 대중들에게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독일 라인헤센 지방에서 생산된 피노그리 품종, 프랑스 보르도 부근의 베르쥬락, 헝가리의 토카이, 남아공의 콘스탄티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와인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철학자로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소박하게 묻히고 싶다.”
그는 생전에 스스로 준비한 상수시의 한 모퉁이에 묻어 달라고 했지만, 조카인 후임 왕은 다른 곳에 그를 묻었다가 독일통일 뒤 비로소 소망대로 지금의 자리에 이장됐다. 대왕의 무덤에서 특이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그의 무덤 위에 놓인 감자인데, 그가 열성적으로 감자보급을 한 덕분에 식량 위기를 이겨 낸 것을 기리기 위함이다. 또 다른 하나는 11개의 돌 위에 쓰여진 이름들, 그것은 그가 사랑했던 11마리의 반려견들이다.
많을 때는 상수시궁전에 50~80마리의 반려견들이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중 가장 사랑했던 반려견은 비슈(biche),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역사상 가장 반려견을 사랑한 왕으로 기록된다. 와인과 글이 만나고, 반려견이 늘 짖어댔으니 그의 인생은 문자 그대로 ‘와글와글’하였다.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를 지낸 인문여행작가.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me,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