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좋다, 잘한다” 소리꾼은 관객들 추임새 먹고 살죠

중앙일보

입력 2021.04.17 00:20

수정 2021.05.15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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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국악계 아이돌 김준수·유태평양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김준수(오른쪽)와 유태평양. 17~18일 2030 젊은 소리꾼을 위한 새 시리즈 ‘절창’의 포문을 연다. 김현동 기자

요즘 판소리가 확 떴다. 17~18일 공연되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절창(絶唱)’은 티켓 오픈 당일 전석매진됐고, 지난해 11월 공연된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수연의 수궁가’도 95.9% 점유율을 보였다. 일반인 수강생을 받는 국립극장 창극아카데미도 전에 없던 호황이다. ‘수궁가’를 재해석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가 지난해 글로벌 히트를 친 것이 도화선이 됐지만, 사실 이런 변화가 갑자기 찾아온 건 아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국립창극단이 ‘변강쇠 점찍고 옹녀’ ‘패왕별희’ ‘트로이와 여인들’ 등 화제작을 여럿 내며 꾸준히 관심을 끌었다. 그 중심에 스타 소리꾼 김준수(30)와 유태평양(29)이 있다.

 
‘절창’도 두 사람이 ‘수궁가’를 함께 부르며 2030 소리꾼들을 위한 새 시리즈의 포문을 여는 공연이다. 김준수는 ‘불후의 명곡’‘너의 목소리가 보여’ 등 예능 방송을 통해 타 장르와의 적극적인 콜라보에 도전해온 창극계 세대교체의 아이콘. 유태평양은 여섯 살 때 ‘흥보가’를 완창한 ‘원조 국악신동’이다. 팬클럽까지 있는 ‘국악계 아이돌’ 단둘이서 공연을 한다니 궁금했다. 이날치 뺨치는 파격적이고 대중적인, 날아갈 듯 가벼운 무대를 보여주려는 걸까.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진짜 ‘전통의 멋’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겠다는 것이다.

국립창극단 신작 ‘절창’ 주연
김준수 “전통 판소리도 재미있어
관객 긴장 풀고 편하게 어울렸으면”

유태평양 “예전 찹쌀~떡, 세~탁 등
민중들 주변 소리 녹여낸 게 판소리”

 
이날치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 충격

 
“어깨가 정말 무거워요. ‘절창’이라는 제목이 ‘뛰어난 소리’라는 의미라는데, 차라리 ‘젊은 소리’라는 뜻의 ‘젊창’으로 바꾸자고 했죠.(웃음) 젊은 소리꾼들이 뿌리로 돌아가는 작업의 스타트를 끊는 거라, 큰 사명감을 갖고 연습에 임하고 있어요.”(김) “감사하게도 이날치 덕에 대중이 판소리에 한 번쯤 더 눈이 가게 됐잖아요. 그런 좋은 영향력들이 모여 저희가 ‘절창’이라는 이름으로 ‘완창’보다 좀 쉬운 공연을 만들게 됐고, 이제 저희 공연 보시고 진짜 전통 완창도 보러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유)


 
두 사람을 마주하니 문득 10년 전쯤 창작판소리 ‘억척가’ 공연을 앞두고 소리꾼 이자람을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왜 도밍고와 파바로티 음색은 구별하면서 소리꾼의 개성은 구별 못 하나”라는 푸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의 소리를 ‘그저 똑같은 판소리’라고 지나칠 사람은 없다.

 
“평양이(유태평양의 애칭) 소리는 나이답지 않게 무겁고 진중하면서도 알이 꽉 차 있죠. 흔히 말하는 ‘타고난 소리꾼’으로서 중심이 단단하기에 언제 들어도 편안함이 있어요. 아마 남자 소리꾼 중 탑이 아닐까요.”(김)“준수 형의 소리는 자유자재로 바뀌어요. 중음역대에서는 성량이 크고 두꺼운 편인데 고음역대에서는 화살처럼 뾰족한 소리를 갖고 있죠. 또 소리를 할 땐 풍부한 성량과 허스키한 음색이면서 가요를 부를 땐 미성을 동시에 구현해내는 팔색조 매력이 있어요.”(유)

 

2019년 KBS ‘불후의 명곡’ 왕중왕전에서 두사람은 고영열과 함께 BTS의 ‘아이돌’을 재해석했다. [사진 KBS]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리면서 주목받아 왔지만, 전통예술이란 좁은 길에서 답답함도 느껴왔다. 대중이 가진 고정관념 탓이다. “듣기도 전에 고루하고 지루한 음악이라고 생각들 하시니까요. 소리라는 게 희열이 느껴지는 음악인데, 그 맛을 보기도 전에 다 안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늘 안타까웠어요. 우리 음악을 하면서도 다른 음악을 하는 것 같은 괴리감이랄까.”(김) “6, 7년 전쯤 어느 공연장에서 만난 아마추어 기타리스트가 저더러 ‘왜 국악은 화성도 없고 단선율이고 음도 안 맞는 것 같냐’고 묻더군요. 그 당시 뭐라고 반박을 못 했어요. 할 말은 많은데 이분이 이해할 수 있게끔 설명을 못 하겠더군요.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지만, 전통음악이란 장르를 많은 사람에게 잘 전달하는 사람이 되야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설명이 아니라 느끼게 해줘야겠다는 거죠.”(유)

 
그래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이었다. 자신들에게 익숙했던 음악을 대중이 엄청 신기하고 흥미롭게 받아들이더란 것이다. “너무 놀랐어요. 우린 듣자마자 바로 아는데, 일반인들에겐 생전 처음 듣는 음악이었던 거죠. ‘촤르르르…’ 이런 게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그동안 판소리를 뭔가 베일에 싸인 것처럼 느끼고 다가가기 힘들어하다가, 일상으로 훅 들어오니 바로 흥미를 느끼게 된 거죠. 개그 프로에까지 나오는 걸 보면서, 판소리도 붐이 일어날 것이란 생각을 했어요. ‘절창’을 통해 하루라도 더 앞당겨졌으면 좋겠네요.”(유) “판소리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만든 시도 자체가 좋았어요. 저희는 전통 판소리로도 재미와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차별화 포인트라 생각합니다.”(김)

 
절제미로 승부하는 ‘명창’들과는 다른 MZ세대 ‘절창’으로서, 자신들이 즐겨 듣는 ‘우리 음악’을 요즘 사람들 취향에 맞게 들려주기 위한 고민은 자연스럽다. “디지털 세상에서 전통음악을 하는 만큼, 우리가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국악기를 디지털 사운드에 접목시켜 연주자들에게 들려드리며 제안을 하기도 했죠.”(유)“저는 판소리에 안무를 붙이고 싶어요. 판소리 요소 중에 발림이 있는데, 전통 소리판에서는 최대한 절제하는 게 미덕이거든요. 저는 움직임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엔 소리와 같이 움직이는 발림을 살려보려고 해요. 판소리 사설은 어려우니까 움직임을 섞으면 관객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 같고요.”(김)

 
대중화를 위해 ‘국악계 아이돌’들을 모아 ‘눈대목 갈라쇼’를 꾸며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작품마다 대표 넘버들을 모아 들려주는 뮤지컬 갈라쇼처럼, 창극의 멋진 레퍼토리들을 활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눈대목이란 건 심청가 ‘범피중류’처럼 소리꾼의 끼와 테크닉을 총동원해 보여줄 수 있는 대목이거든요. 판소리가 흥행하던 시절에는 귀명창들이 그 대목만 딱 듣고도 소리꾼을 평가할 수 있었죠.”(유)“완창이란 게 생기기 전에 토막소리로 부를 때, 소리꾼의 장기를 보여주는 부분이 눈대목이 된 것이거든요. 임방울 선생의 장기였던 쑥대머리란 대목 자체가 눈대목이 된 것처럼요. 뮤지컬에서 조승우의 ‘지금 이 순간’ 같은 거죠. 그런 대목들을 한 무대에서 엮어서 보여준다면 정말 재밌지 않을까요.”(김)

 
사실 판소리 대중화의 장벽은 선뜻 따라 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가무의 민족이지만 노래방에서 판소리를 부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인의 DNA 어딘가에 소리가 배겨있다는 주장이다.

 
‘눈대목 갈라쇼’ 꾸며보고 싶어

 
“제가 장담하는데, 누구나 ‘사랑가’의 한 대목인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분명히 자기 몸속에 있는데 꺼내지지 않을 뿐이죠. 우리 어릴 때 동네에서 ‘찹쌀~떡’‘세~탁’ 같은 소리 많이 듣지 않았나요. 그런 소리들이 사실 다 판소리 안에 녹아 있어요. 그래서 ‘판소리’인 것 같아요. 음악뿐 아니라 민중들의 소리, 모든 주변의 소리를 녹여낸 것이 판소리죠.”(유) “논에서 일하다가 ‘아이고~물이나 먹어야겠다’고 하던 노동요가 민요가 된 것처럼, 말에서 비롯된 음악이니까요. 사실 팬분들은 이제 추임새도 곧잘 넣으시고, 진도아리랑 부르다 마이크 넘겨주면 후렴구를 받아줄 정도예요. 관객과 함께 하는 떼창처럼 되는데, 저희 어릴 땐 볼 수 없었던 광경이죠. 그만큼 국악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김)

 
판소리나 창극에서 관객의 추임새는 필수에 가까운데, 현대화된 공연에서는 많이 들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클래식을 비롯한 공연 관람 문화가 엄숙해지고 있지만, 소리 공연만큼은 제발 편안한 마음으로 봐달라는 게 이들의 당부다. “얼마 전 저희 둘이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씨 콘서트를 갔어요. 제가 클래식 공연에 처음 가본 건데, 공연이 끝날 때까지 숨죽이는 긴장감이 너무 낯설더군요. 프로그램 하나 넘길 때도 덜덜 떨었죠.(웃음) 우린 추임새 주고받으면서 힘을 얻는데, 문화가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어요.”(김) “누가 핸드폰을 떨어뜨리니 연주자가 시작하려다 손을 거두고, 관객들이 일제히 그 사람을 돌아보더군요. 우리 같으면 ‘아이고~ 핸드폰 떨어뜨렸어요?’ 웃고 넘길 텐데 말이죠.”(유) “오히려 저희는 조용하면 힘들어서, 전통 소리판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공연에서 관객과 추임새 주고받는 시간을 가지려 해요. 관객들이 마음엔 있지만 꺼내는 걸 어려워하는데, 그냥 따라해 보시라고 하는 거죠. 얼씨구, 좋다, 잘한다, 잘생겼다.(웃음) 긴장 풀고 편하게 어울렸으면 좋겠어요.”(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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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현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yj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