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적폐 첫 유죄, 내 편 봐주기…사법부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입력 2021.04.0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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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일들이 ‘김명수 사법부’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실질은 물론이고 외양마저 공정하고 정의롭게 비쳐야 할 재판이 ‘코드 인사’와 ‘내 편 봐주기, 네 편 엄벌 판결’로 일그러지면서 국민 불신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다.
 
청와대의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대표적인 코드 재판, 지연 재판으로 꼽힌다. 검찰이 수혜 당사자인 송철호 울산시장과 청와대 민정수석, 울산지방경찰청장 등 현직 때 그의 선거를 조직적으로 지원한 혐의로 13명을 불구속 재판에 넘긴 게 지난해 1월이다. 하지만 지난 1년 3개월간 본(本)재판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쟁점을 정리하는 재판준비기일만 6번이나 열었다. 재판이 공전한 것이다. 동료 판사들마저 정상적 재판 진행이 아니라고 한다. 담당 재판부는 “검사와 피고인 쌍방의 사정으로 준비절차만 계속 진행됐다”고 말하지만 변명에 불과하다. 재판부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신속 심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코드 인사로 인권법 출신 등 요직 중용
‘사법 적폐’ 판사 2명엔 첫 유죄 선고
청와대 선거개입 본재판은 이제 걸음마

더욱이 이 사건 연루자들의 죄질은 나쁘다. 송 시장 당선을 위한 순환고속도로 예타면제, 산재모병원 대신 공공병원 검토 등의 공약 개발·지원은 물론, 상대 후보 기획수사까지 서슴지 않은 것으로 검찰 공소장에 적혀 있다. 이 모든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30년지기’인 송철호 후보를 두고 “제 소원은 그의 당선을 보는 것”라고 언급한 데서 시작됐다고 한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청와대 윗선까지 수사가 더 진행될 필요도 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김미리 부장판사가 재판을 장시간 방치하면서 실체적 진실 발견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 부장판사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멤버로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코드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정권이 불편해하는 재판의 진행을 늦추고 종국에는 원하는 판결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대법원장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산다.
 
원래 ‘서울중앙지법 최장 3년 근무’ 관행에 따라 올 초 정기 인사 대상이었던 김 부장판사가 이례적으로 유임돼 4년째 근무 중인 것도 대법원장 의중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김 부장판사가 조국 전 장관 동생 사건, 유재수 비위 감찰 무마 사건, 최강욱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등 현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주요 사건을 집중 배당받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들 사건 재판 과정에서 끊임없이 편파·코드 논란이 제기됐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번 인사 때 ‘사법 적폐’ 재판을 맡은 형사합의 36부 윤종섭 부장판사도 유임시켰다. 그 인사로 무려 6년째 서울중앙지법에 근무하게 됐다. 2017년 김 대법원장에게 ‘사법 농단을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던 그가 최근 이민걸·이규진 전 판사 등 2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판결의 방향을 바꿔놨다.  사법 적폐로 기소된 14명 가운데 첫 유죄다. 코드 판결인 셈이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건에서도 유죄가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은 물론이고 판사들에게 재판을 배정하는 핵심 보직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인사들이 줄줄이 배치됐다. 정권 관련 재판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 자기편 판사를 알박기하는 것이 아니라면 뭔가. 공정성과 중립성을 잃은 ‘내 편 중용, 네 편 유배’ 인사가 사법부의 독립성을 심하게 좀먹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취임 때 내걸었던 ‘좋은 재판’ 역시 헛구호가 됐다. 판사의 성향에 따라 결론이 널뛰기를 하는 바람에 이기는 쪽도, 지는 쪽도 마음으로 승복하지 않는다. 한때 사회 갈등 해결의 최후 보루라는 법원이 오히려 사회 갈등의 또 다른 진원지가 되고 있다. 사법부가 이 지경까지 온 데는 김 대법원장의 책임이 가장 크다. 김 대법원장이 시급히 특단의 조처를 내리지 않으면 사법 불신을 넘어 국민의 판결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