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는 2019년 김포·예천 등 경쟁 도시들을 제치고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건립지로 선정됐다. 천안시는 축구센터 안에 축구박물관을 짓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약속대로 박물관 건립 준비를 해 왔다. 문제는 박물관 안에 채울 유물의 양과 질이었다. 천안시는 4만여 점의 축구 관련 유물과 자료를 가진 이재형씨와 꾸준히 접촉해 우선 129점을 기증받기로 했다. 그중에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예선 한-일전 포스터 같은 희귀 아이템도 있고, 펠레·마라도나 유니폼 같은 ‘국제명품’도 있다. 이재형씨는 “혼자 사는 아파트에 꽉꽉 채워 더 이상 보관할 데도 없을 만큼 많은 한국축구의 보물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돼 기쁘다. 고이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느낌”이라며 웃었다. 축구협회도 60여 점을 기증했다.
천안에 축구박물관 건립 착착 진행
야구도 기장군-KBO 합의 끌어내야
야구 쪽으로 넘어가 보자. 사실 야구가 축구보다 조건이 더 좋았다. 2014년 3월 부산시와 기장군,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 실시협약’을 체결했다. 부산시가 108억원의 건립비를 대고, 기장군은 1850㎡의 부지와 부대시설 등을 조성하며, 운영은 KBO가 맡기로 했다. 기장군은 이와 별도로 280억원을 투입해 명예의 전당이 들어설 기장-현대차 드림볼 파크에 정규야구장 4면과 리틀야구장·소프트볼장 등을 조성했다. 실내야구 연습장과 야구 체험관도 신축 예정이다.
그런데 연간 20억원 정도로 추정되는 운영비에 부담을 느낀 KBO가 미적대면서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3연임 중인 오규석 기장군수는 속이 탄다. 임기 만료(내년 6월)가 코앞인데 자신이 유치한 명예의 전당 사업이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다. 그는 지난해 10월 KBO회관 앞에서 명예의 전당 건립 촉구 1인 피켓 시위도 했다. 오 군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시설 운영비 부분을 기장군이 전액 부담할 용의도 있다. 신임 KBO 총재(정지택)께서 강한 의지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다”며 KBO를 압박했다.
KBO도 난감한 처지다.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제한관중 경기가 길어지면서 살림살이가 극도로 옹색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팀 해체를 걱정해야 할 구단들이 있는데 명예의 전당에 예산을 투입하는 게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거부할 명분도 없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기장에 명예의 전당이 건립되지 않을 확률은 0.1%도 안 된다.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KBO회관 지하 1층 아카이브 센터에는 3만2000여 점의 기증품과 자료가 있다.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겹겹이 쌓인 물품들이 명예의 전당으로 이사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KBO와 기장군의 줄다리기가 하루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 명예의 전당이 지어지면 1호 헌액자는 누가 될까. 투수 최동원·선동열·박찬호? 타자 이승엽·이종범? 감독 김응용·김경문? 이것도 투표하면 재밌을 것 같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