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 국민연금
그런 김씨는 15일 삼성전자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뉴스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삼성전자 지분 9.99%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주총에 상정된 사외이사 연임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과정에서 벌어진 잡음 때문이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가 반대 의결권 행사를 권고했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내부 투자위원회(투자위)에서 찬성표를 행사하기로 정하고, 홈페이지에 공시했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돼 국민연금의 투자기업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일부 위원들이 재논의를 요구했는 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수탁위원 두 명이 사의를 표명했다. 통상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침은 투자위나 수탁위에서 정하는데, 투자위가 결정하기 곤란한 사안 등은 수탁위로 넘겨왔다.
과거 잣대로 국내 주식 비중 조절
개미들의 ‘공공의 적’으로 변해
작년 수익률, 삼성전자보다 낮아
비중 많은 해외주식은 10%에 그쳐
폐쇄적·불투명한 의사결정도 문제
내부 견제 장치 수탁위 유명무실
ESG 투자 2024년 500조로 늘려
신연금사회주의 갈등 빚을 우려도
최근 국내 증시에서 국민연금은 동학개미의 ‘공공의 적’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의 노후자금 833조7000억원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과거 증시 침체기에 정부의 압박에 밀려 주식을 사서 논란이 됐다. 지금은 정반대다. 연일 주식을 파는 바람에 ‘증시의 안전판’이 ‘증시의 뇌관’이 됐다. 버블·인플레이션 논란으로 국내외 증시가 흔들리는 시점에 연기금의 매도세가 집중된 까닭에 증시 상승의 뒷다리를 잡은 세력으로 부각됐다.
물론 국민연금이 증시에 찬물을 끼얹으려고 순매도 행진을 이어온 건 아니다. 지난해 심의·의결된 국민연금의 5개년(2021~2025년) 자산 배분 계획에 따르면 운용 자산 가운데 올 연말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는 16.8%다. 지난해 말 21.2%였음을 감안하면 아직 20조원 넘게 더 팔아야 한다. 16.8%라는 목표치에서 최대 ±5%포인트의 오차가 허용되지만, 국민연금으로선 차익 실현으로 수익을 확정할 필요성도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 국민연금이 주식 투자로 올린 수익률도 그다지 높지 않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 주식에 176조7000억원을 투자해 34.66%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벤치마크인 코스피 상승률(30.75%)보다는 높지만 코스닥(44.58%)은 물론 동학개미가 가장 많이 투자한 삼성전자(45.16%)와의 격차도 컸다. 특히 해외 주식에 국내 주식보다 많은 192조8000억원을 투자하고도 수익률은 10.76%에 그쳤다(지난해 나스닥 상승률은 43.64%).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2025년까지 국내 주식 비중을 15%로 낮추고 해외 주식 비중은 35%로 대폭 높일 예정이다. 세간에서 국민연금이 세계 3대 연기금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고 최상의 운용을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유다.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 수익률은 2018년 -0.9%로 떨어지면서 악화했다가 2019년 11.3%, 지난해 9.7%(잠정치)로 반등했다. 그러나 국내외 증시의 호황을 감안하면 기대에 못 미쳤다.
국민연금의 자산 운용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기금운용위원회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총 20명의 위원이 매 분기 1회 이상 모여 의견을 나누는 구조다. 당연직 위원 6명, 근로자 대표 3명, 사용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관계 전문가 2명으로 구성된다. 곽관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기금의 투자·운용이나 기업 경영에 전문 지식이 부족한 위원들이 참여해 우려가 적지 않다”며 “실무 집행을 하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와 복지부 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의 투자 전문성을 한층 강화하고, 투자 판단은 투자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노후 안전판 역할 할지 의문”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규정상 외부 제3자인 수탁위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의사결정 관련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유니버설 오너(거대한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를 대폭 확대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내년에는 전체 기금 자산의 절반 수준까지 ESG 투자를 확대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SG 요소를 반영한 국민연금기금 투자액은 2024년 무렵 5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산업계 친환경 바람이 거세지면서 미국·유럽의 연기금 투자도 ESG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2016년 국내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연금사회주의 논란이 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연금이 ESG 관련 기업·금융상품에 투자를 늘리면 ‘신연금사회주의’ 갈등을 빚을 우려가 있다. 재계 관계자는 "수익률도 그다지 높지 않고, 전문성·독립성·투명성 부족 논란만 무성한 국민연금이 과연 ‘국민의 노후 안전판’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해외 연기금 ESG 투자 급증, 작년 4경5522조원…국내외 관련 펀드 수익률 고공행진
한국조선해양·SK이노베이션·한국전력 등은 스웨덴 연기금 AP7으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지만, 노동권·인권·화석연료 사용 등 지속가능 성장 관점에서 낙제점을 받아서다. 주요 연기금들은 최근 모든 투자의 초점을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맞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며, 허들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지속가능 투자 분석 조직인 GSIA(Global Sustainable Investment Review)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ESG 관련 투자·운용 자산 규모는 40조5000억 달러(약 4경 5522조원)로 2012년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정부가 ESG 정책 목표를 정하면 연기금이 투자 기준을 설정하고, 자산운용사가 이에 따라 투자를 집행해 기업의 행동 변화를 끌어내고 있다. ESG 범위는 날로 넓어지고, 기준도 세분되고 있으며, 지표도 강화되고 있어 자연히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유럽의 ESG 투자 규모는 2018년 기준 14조 달러, 미국은 11조9950억 달러에 이른다. 2014~18년 연평균 증가률은 각각 6.91%, 16.23%다. 일본 이 기간 ESG 투자를 연평균 320.09% 늘렸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 CalPERS) 등 미국의 연기금의 경우 모든 자산에 책임투자 방식을 적용, 네거티브·투자배제 스크리닝으로 ESG 기준에 맞지 않는 기업을 솎아내고 있다. 네덜란드 연기금(PGGM)·노르웨이 정부 연기금(GPFG) 등 유럽은 네거티브 방식과 우수 기업 선정 등 포지티브 방식과 지역사회 투자·ESG 통합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주요국 정부도 ESG 채권을 발행해 연기금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은 국가·증권·펀드의 ESG 등급을 만들어 투자 적격도를 평가하고 있다.
황운경 대신경제연구소 법제도연구팀장은 보고서에서 “연기금이 ESG 투자에 나설 경우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담배 기업 투자를 포기하고 다른 품목에 투자한 캘퍼스의 결과는 긍정적이었다”며 “국민연금도 해외 연기금처럼 명확한 투자 제한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외에서 ESG 관련 펀드의 수익률은 높은 편이다. 펀드닥터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43개 ESG 관련 펀드 중 상위 10개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43.87%를 기록했다. K200인덱스펀드(40.41%)보다 높았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ESG 펀드인 마이다스책임투자증권투자신탁은 지난 3개월간 12%의 수익률(18일 기준)을 기록해 펀드 유형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K200인덱스(13.25%)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삼성전자·LG화학·SK하이닉스 등 종목을 주로 담았다. 글로벌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ESG 관련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상품은 인베스코 솔라 상장지수펀드(ETF)로 240%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ESG 관련 상품이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이런 흐름은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유럽의 ESG 투자 규모는 2018년 기준 14조 달러, 미국은 11조9950억 달러에 이른다. 2014~18년 연평균 증가률은 각각 6.91%, 16.23%다. 일본 이 기간 ESG 투자를 연평균 320.09% 늘렸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 CalPERS) 등 미국의 연기금의 경우 모든 자산에 책임투자 방식을 적용, 네거티브·투자배제 스크리닝으로 ESG 기준에 맞지 않는 기업을 솎아내고 있다. 네덜란드 연기금(PGGM)·노르웨이 정부 연기금(GPFG) 등 유럽은 네거티브 방식과 우수 기업 선정 등 포지티브 방식과 지역사회 투자·ESG 통합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주요국 정부도 ESG 채권을 발행해 연기금들의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이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은 국가·증권·펀드의 ESG 등급을 만들어 투자 적격도를 평가하고 있다.
황운경 대신경제연구소 법제도연구팀장은 보고서에서 “연기금이 ESG 투자에 나설 경우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담배 기업 투자를 포기하고 다른 품목에 투자한 캘퍼스의 결과는 긍정적이었다”며 “국민연금도 해외 연기금처럼 명확한 투자 제한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외에서 ESG 관련 펀드의 수익률은 높은 편이다. 펀드닥터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43개 ESG 관련 펀드 중 상위 10개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은 43.87%를 기록했다. K200인덱스펀드(40.41%)보다 높았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ESG 펀드인 마이다스책임투자증권투자신탁은 지난 3개월간 12%의 수익률(18일 기준)을 기록해 펀드 유형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K200인덱스(13.25%)와 비슷한 수준을 기록했다. 삼성전자·LG화학·SK하이닉스 등 종목을 주로 담았다. 글로벌 펀드 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ESG 관련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상품은 인베스코 솔라 상장지수펀드(ETF)로 240%를 기록하는 등 세계적으로도 ESG 관련 상품이 높은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