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여정(74)의 이 ‘필생의 목적’이 미국 영화 시상식들을 뒤집어놨습니다. 재미교포 2세 리 아이삭 정, 한국이름 정이삭 감독의 독립영화 ‘미나리’가 지난해 초 선댄스 심사위원대상·관객상부터 받기 시작한 59개의 상 중 20개가 그의 여우조연상입니다. 코로나19로 올 4월로 미룬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기생충’도 못한 한국 국적 최초 배우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1966년 TBC 3기 탤런트 데뷔해 올해 56년차. 그가 새 전성기를 연 ‘미나리’는 정 감독의 1980년대 자전적 가족 이민사가 토대입니다. 미드 ‘워킹 데드’, 영화 ‘버닝’ ‘옥자’의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이 제작 겸 주연을 맡아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심장을 건드렸지요. 한국의 영화진흥위원회 격인 미국영화연구소(AFI)가 꼽은 ‘2020년 올해의 영화’ 10편에도 들어갔습니다.
윤여정이 연기한 순자는 이민 간 딸 모니카(한예리)를 따라 된장 냄새 풍기며 미국에 온, 여섯 살 손주 데이빗(앨런 김)의 외할머니입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미국 시골에 심으며 남긴 명대사가 있습니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란단다. 원더풀 미나리, 원더풀.” 어디서든 뿌리내리고 살아가야 하는 이민자 가족의 운명. 페이크 다큐멘터리 영화 ‘여배우들’에서 한류 스타 후배 배우들에게 “난 재래시장이나 지킬게” 했던 윤여정은 그 재래시장 감각으로 세계 무대를 접수했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