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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연 "진실된 한국인 모습 미국에 전하려 '미나리' 제작"

중앙일보

입력

영화 '미나리'의 (왼쪽부터) 주연 배우 한예리, 윤여정, 스티븐 연, 알란 김, 리 아이삭 정 감독과 노엘 조가 코로나19가 전세계에 확산하기 전인 올해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함께 모였다. [AP=연합뉴스]

영화 '미나리'의 (왼쪽부터) 주연 배우 한예리, 윤여정, 스티븐 연, 알란 김, 리 아이삭 정 감독과 노엘 조가 코로나19가 전세계에 확산하기 전인 올해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함께 모였다. [AP=연합뉴스]

“영화 제목은 처음부터 ‘미나리’여야 했어요. 실제 우리 가족이 미국에 갔을 때 할머니가 미나리 씨를 가져가서 심었어요. 우리 집이 한국 채소농장을 했지만, 미나리는 오직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었고 할머니의 사랑이 녹아있었죠.”

23일 자전적 영화 ‘미나리’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재미교포 리 아이삭 정(한국이름 정이삭) 감독은 영어 제목도 미나리의 한국식 발음(Minari)으로 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저녁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상영에 앞서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 참여해서다. 코로나19로 인해 그와 제작을 겸한 주연배우 스티븐 연은 각각 미국 자택에서, 배우 윤여정과 한예리는 부산영화제 스튜디오에서 화상 방식으로 간담회에 함께했다.

23일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상영 '미나리' #재미교포 감독, 자전적 가족 이민사 그려 #주연 스티븐 연 "제 아버지 이해하게 돼"

병아리감별사·한국농장…한인 1세대 아메리칸 드림 

영화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에 간 정 감독의 가족 이야기가 토대다. 10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다 자신의 농장을 일구려 아칸소 외딴 시골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민 1세대 아버지(스티븐 연)와 어머니(한예리)를 여섯 살 막내(알란 S 김)와 누나 시선을 통해 공감가게 담아냈다. 미국이 더 익숙한 막내가 한국에서 찾아온 외할머니(윤여정) ‘냄새’를 낯설어하다가 할머니의 화투 애제자가 되고, 삐걱대던 가족이 다시 부둥켜안는 여정도 뭉클하게 그려진다. 올 1월 열린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관객상 2관왕을 차지했고, 버라이어티‧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미나리’를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 꼽으며 주목했다.
선댄스 수상 소식에 “깜짝 놀랐다”는 정 감독은 “‘기생충’이 미국에서 엄청나게 사랑받으면서 미국 관객이 더 많이 포용하고 받아들이게 됐구나, 생각했다. 한국적 콘텐트가 일반적인 미국 관객에게 연결되고 공감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스티븐 연 "진실된 한국인 모습 전하려 영화 제작"

'버닝' '옥자' 배우 스티븐 연이 주연,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한인 이민자 가족영화 '미나리'도 올해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A24]

'버닝' '옥자' 배우 스티븐 연이 주연,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한인 이민자 가족영화 '미나리'도 올해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A24]

“미국 사람의 관점에서 한국 사람은 우리가 보는 한국인과 굉장히 달라요. 우리가 아는 진실된 한국인의 모습을 전하기 위해선 영화 제작의 모든 공정에 (한국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인에 대한) 이런 영화 제작에 참여하려 합니다.” 이번 영화 제작을 겸한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연의 말이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이창동 감독의 ‘버닝’으로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하며 배우로서 재조명된 그는 이번 영화에서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간 우직한 가장 역을 맡아 철저히 한국인 같은 한국어 발음에 도전했다.
그는 “처음 ‘윤 선생님’(그와 정 감독은 윤여정을 한국말로 이렇게 불렀다) 만났을 때 ‘선생님 많이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한국말) 했다”고 한국말을 섞어 털어놨다. “한국어 연기 굉장히 무서웠죠. ‘버닝’의 한국인 캐릭터는 단조로운 톤의 느낌 다른 한국어를 구사해서 어렵지 않았는데 이 영화는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해야 했어요. 저희 부모님 말할 때 유심히 봤고 아이삭 감독과도 많이 대화했어요. 한국 이민자 이미지보다 제이콥의 내면, 제이콥이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연기했죠. ‘예리씨’(한국말)의 진솔한 연기에도 큰 도움을 받았어요.”

"한국말 대사? 윤 선생님 도와주세요"

22일 온라인 진행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 초청작 '미나리' 기자 간담회 현장. 재미교포 아이삭 정(한국이름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가족의 미국 이민 초기를 토대로 한 자전적 영화로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연이 제작을 겸했다. 이날 두 사람은 미국에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출연 배우 윤여정, 한예리는 부산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22일 온라인 진행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 초청작 '미나리' 기자 간담회 현장. 재미교포 아이삭 정(한국이름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가족의 미국 이민 초기를 토대로 한 자전적 영화로 한국계 할리우드 배우 스티븐 연이 제작을 겸했다. 이날 두 사람은 미국에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출연 배우 윤여정, 한예리는 부산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실제 이민 2세인 그는 “저 역시 한국과 미국 그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고 중간에 끼어있는 느낌을 가장 많이 느꼈고 그로 인해 가족끼리 훨씬 더 끈끈해졌다”면서 “제이콥이 저의 아버지와 닮았다.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고 저 역시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가족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정 감독은 그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제이콥은 저의 아버지뿐 아니라 이제 아버지가 된 저와도 가장 가까운 캐릭터”라며 “스티븐만이 제이콥을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했다. 윤여정에 대해선 “처음엔 고약한 말로 아이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결국 할머니의 사랑을 느끼고 좋아하게 만드는 정직하고 서슴없는 역할에 딱”이라며 윤여정이 이번 영화로 현지 언론에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감에 거론된 데 대해 “미국이 ‘윤 선생님’ 같은 보물을 알아봤다는 게 기쁘다”고 했다. 어머니 모니카 역의 한예리에 대해 정 감독은 “외유내강 성격의 모니카는 이 영화의 심장과 같다. 한예리에게서 그런 모습을 봤다”고 했다.

감독 "부산 가서 돼지국밥 못 먹어서 아쉬워요"

올초 선댄스영화제에서 리 아이삭 정 감독과 제작자 겸 주연 배우 스티븐 연. [AP=연합뉴스]

올초 선댄스영화제에서 리 아이삭 정 감독과 제작자 겸 주연 배우 스티븐 연. [AP=연합뉴스]

한예리는 이번이 첫 미국영화 진출이다. 현장 모니터도 없는 저예산 영화인 탓에 촬영 기간 내내 윤여정을 비롯한 출연진과 여러 스태프들이 한집을 빌려 정 감독, 스티븐 연까지 거의 매일 같이 밥 해 먹고 빨래하며 지냈다고 말했다. “정말 가족이었다”며 그가 웃었다.
이번 영화는 정 감독의 실화에 상상도 보탰지만, 극 말미 가족이 맞닥뜨리는 뜻밖의 상황은 실제 있었던 일이란다. 정 감독은 “실제론 더 심각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때 저는 어렸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상황을 헤쳐 나갔는지 생존의 여러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느꼈죠.”
실제 미국 아칸소 출신으로 예일대에서 생태학을 전공한 뒤 영화의 꿈을 키운 정 감독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찍은 데뷔작 ‘문유랑가보’(2007)로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번 네 번째 장편 극영화 ‘미나리’는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가와세 나오미 등 거장 감독들의 신작과 나란히 부산영화제 갈라 프리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직접 부산에 가서 ‘돼지국밥’ 못 먹어서 아쉽지만 영화제 관객분들이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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