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는 7일(현지시간) 닐 쉬한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보도를 금지해달라는 재판을 낸 저널리스트였다”고 소개했다. 닐의 가족에 따르면 파킨슨병을 앓았던 그는 이날 자택에서 숨졌다. NYT는 그를 “특종 보도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함께 수상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1959~62년 미 육군에 복무한 닐은 한국과 일본에도 배치됐다. 일본 복무 시절, 미국 통신사 UPI의 도쿄 지국에서 기자로 일을 시작했다. 제대한 뒤엔 베트남 사이공으로 발령 나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다.
1964년 NYT로 옮긴 그가 다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게 된 건,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부설 국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다니엘 엘스버그를 만난 뒤였다.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참여했던 다니엘은 미국 정부의 파렴치한 민낯을 알리기 위해 닐에게 은밀히 사본을 전달했다. 다니엘 엘스버그는 2002년 펴낸 자서전에서 “전쟁의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사본을 만들었고, 이를 보관하고 있던 아파트의 열쇠를 닐에게 건넸다”고 회고했다.
당시 공개된 7000장이 넘는 펜타곤 페이퍼 곳곳엔 충격적인 사실이 담겨 있었다. 그중 가장 논란이 된 건 ‘통킹 만 사건’이었다. 64년 베트남 어뢰정이 미군 구축함 매독스호를 공격했다고 알려지자, 미국 정부는 이를 명분 삼아 베트남 전쟁을 확대했다. 하지만 실제 베트남의 도발은 없었고, 미국이 이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닉슨 정부는 “기밀 유출로 국가 안보가 위협받는다”며 NYT와 WP의 후속보도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정부 손을 들어줬지만, 연방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당시 연방 대법원은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리도록 한 것”이라고 판결 취지를 설명했다. 국가 기밀을 이유로 수정헌법 1조에 보장된 언론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는 이 역사적 판례는 이후 '내부 폭로자의 시대'을 연 기폭제가 됐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