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분했던 축구국가대항전 얘기로 시작한 건 이번 코로나19 백신 정책 발표를 보며 이렇게 속 터졌던 경기 장면들이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그라운드엔 백신이라는 ‘게임체인저’가 등장하면서 경기의 양상이 바뀐다는 예고편이 진작에 나온 터였다. 이젠 누가 먼저 백신으로 코로나19 국면에서 벗어나 출구를 빠져나가느냐가 승패를 결정짓는 순간이 된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백신 접종
이제야 백신 도입 계획 발표한 한국
과감, 신속해야 할 백신 확보 늑장
코로나와 민생 극복 실력은 있는가
이렇게 지체된 것을 정부는 ‘신중함’으로 설명했다. 먼저 접종한 나라들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지켜본 뒤 해도 늦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감예방주사에도 사망자가 나오는데 어떻게 새로운 백신에서 완벽한 안전함을 기대할 수 있겠나. 그런데도 그 사이 캐나다는 인구 대비 4배, 영국과 호주는 3배 등 많은 나라가 인구 전체가 다 맞고도 남을 만큼의 백신을 선주문했다.
감염병 팬데믹 대응 매뉴얼은 의외로 간명하다. 차단과 격리로 백신이 나올 때까지 버티고, 백신으로 탈출한다는 것. 전문가들은 백신 전략 매뉴얼을 이렇게 말한다. ‘확보는 과감하게 접종은 신중하게’.
그런데 과감해야 할 순간 미적거린 당국은 국민 안전성에다 혹시라도 날릴지 모르는 선급금을 아끼려 했던 노력을 자랑한다. 듣기엔 아름답다. 그렇다면 코로나 탈출이 반년 이상 늦어짐으로써 지체될 우리 경제와 민생의 어려움, 그로 인해 날릴 돈이 그 선급금보다 적을까. 백신 접종으로 인한 부작용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사망과 고통, 부작용보다 더 클까. 이런 근거들을 바탕으로 계산해야 했다. 그 결과값은 선진국들의 짙은 색깔이 보여준다. 선진국은 일사불란하게 최소한 백신 확보는 신속 과감하게 하라는 매뉴얼에 따랐다. 그런데 우리는 속도가 관건인 게임에서 늑장을 부리곤 ‘충정’의 수사학으로 얼버무린다.
요즘 항간에선 “코로나에 걸리기 전에 굶어 죽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코로나19는 감염병만의 문제가 아니다. 숫자로만 보면 누적 확진자는 인구 대비 0.1% 미만인데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경제활동의 지체와 생활고로 무너지기 직전이다. 경제는 심리 싸움이다. 충분한 백신 물량을 확보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백신이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지금 경제 심리에 긍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재화는 ‘백신’뿐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탈출 과정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94세의 영국 여왕이 백신 접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책 당국이 해야 했던 일은 ‘리스크 테이킹’을 전제하고, 예상되는 위험들을 어떻게 감수하고 극복할지 전략을 세우는 것이어야 했다.
최근 미국과 영국 컨설팅사와 저널 등에서 내는 고객사에 대한 코멘터리에선 이미 코로나에서 벗어난 이후의 기업 관리 내용으로 바뀐 게 확연히 보인다. 그동안 고립과 위기를 겪은 근로자들의 정신건강을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오랜 비대면 근무를 대면 근무로 바꿀 때 어떻게 조직 분위기를 바꿀지에 대한 코멘트가 섬세하게 이어진다. 백신이 가져온 자신감이다.
이 대목에서 정말 한번 묻고 싶다. 정책당국의 ‘신중함’은 소신인가, 무능인가. 그라운드에선 K-방역으로 부지런히 뛰고, 골 결정력 부족으로 패배한 경기는 재연되지 않을까. “탐관오리보다 청렴무지무능한 관료가 더 많은 백성을 죽인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정책당국의 무사안일로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는 걸 민간의 실력으로 끌고 온 측면이 있다. 그런데 백신은 민간이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야 ‘백신 추가 확보 노력’을 지시했다. 외국에선 국가수반이 공항으로 백신 마중을 가는 판국에 ‘뒷북’인 듯도 싶지만, 그래도 이젠 대통령 개인기에라도 기대를 걸고 싶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