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선생은 조카에게 남긴 유훈에 ‘비석을 세우지 말고 작은 돌 전면에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는 10자만 쓰라‘고 이릅니다. ‘늘그막에야 도산에 물러나 숨어산 진성 이공의 묘’라고 자신을 한없이 낮춘 것이죠. 최고 학식과 관직에 오르고도 마지막까지 검소·겸손했던 그 분의 삶과 죽음에서 저 자신부터 매일 새롭게 배웁니다.”
1000원 지폐 주인공으로 매일 접하는 퇴계 이황(1501~1570)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통계청장·기획예산처 장관 등을 지낸 김병일(75) 도산서원장 역시 2008년 도산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을 맡기 전까진 어렴풋이 아는 정도였다고 한다. “무급 봉사직으로 1년에 두 번 내려갈까 했는데, 퇴계 정신을 공부하다보니 한달에 두 번, 매 주 두 번으로 잦아져서 2015년부턴 도산서원 원장까지 맡게 됐다”고 돌아봤다. 2012년 『퇴계처럼』을 시작으로 지난해 『퇴계의 길을 따라』까지 세권의 책을 내는 등 자타 공인 ‘퇴계 전도사’가 됐다.
김병일 도산서원장 "100세 시대 귀감인 분"
퇴계 서거 450주년 맞아 안동서 추모행사
"나이 들어 '꼰대'는 유교·선비정신과 멀어"
“병세가 위독해지자 ‘빌린 책을 잊지 말고 돌려주라’고 자식에게 당부합니다. 이어 남긴 네 가지 유훈에는 ‘예장(禮葬·국가장의 일종)을 하지 마라, 제사에는 유밀과(油蜜果)를 쓰지 마라’ 등 공동체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한 배려가 역력합니다. 특히 숨지기 전 마지막 말이 ‘매화에 물을 주라’인데, 평소 인격을 부여해 ‘매형’ ‘매군’ 등으로 부르면서 매화의 절개를 닮으려했던 그의 자연친화적 세계관이야말로 21세기 우리가 새겨야 할 태도 아닐까요.”
퇴계 정신을 설파하면서 그 자신도 매일 반성하고 성찰한다고 한다. “세상에서 어느 정도 이룬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고 물질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세태가 있죠. 노년이 될수록 어른이 돼야 하는데, 요즘 ‘꼰대’란 말이 보여주듯 세대갈등이 훨씬 심합니다. 유교나 선비정신 가운데 가장 거룩한 것을 버려두고 장유유서 등 폐습을 고집해선 안될 일이죠. 하물며 퇴계 선생은 신분제·가부장 사회에 살면서도 노비 인격까지 배려했는데, 그런 정신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가 이사장으로 13년째 재임 중인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2001년 11월 퇴계 탄신 500주년을 맞아 퇴계종택에서 기부한 1억원을 재원으로 설립됐다. 처음엔 은퇴 교원 3~4명의 자원 봉사로 시작됐다가 이젠 퇴임 교장·교육장 출신 등 163명의 지도위원들이 ‘선비정신’을 나누고 실천하는 데 앞장선다. 2013년부터 입교수련 외에 각 지역 학교의 요청에 의해 ‘찾아가는 학교수련’을 겸하면서 올 11월 현재 수련 누적인원이 87만여명(7213회)에 이른다. 퇴계 450주년 추모행사는 코로나19로 인해 현장 참석인원을 최소화하고 유튜브 채널 등으로 강연을 중계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