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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에 진열된 '명품 유물'…왕의 거처를 유원지 삼은 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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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이 일제가 설립·운영했던 '이왕가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유리건판 사진 16점을 25일 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왕가박물관은 일제가 주도해 제실박물관이란 이름으로 1909년 창경궁 안에 개관했다.   사진은 팔부중상이 새겨진 석탑 기단부 면석을 찍은 유리건판 사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일제가 설립·운영했던 '이왕가박물관'에서 전시했던 유리건판 사진 16점을 25일 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왕가박물관은 일제가 주도해 제실박물관이란 이름으로 1909년 창경궁 안에 개관했다. 사진은 팔부중상이 새겨진 석탑 기단부 면석을 찍은 유리건판 사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1909년(융희 3년)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이 창경궁 안에 개관했다. 고종이 강제 양위 당하고 즉위한 순종이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자 일제는 ‘왕가 오락’ 명목으로 인접한 창경궁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키고 박물관 외에 식물원·동물원도 조성했다. 설립 추진 초기엔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으로 불리다가 한일병합 이후 공식적으로 이왕가박물관이 됐다. 일반 공개 첫날 180여명이 몰려드는 등 오백년간 궁궐이었다가 이제 유원지가 된 ‘창경원’을 찾는 이들이 연일 북새통을 이뤘다.

1909년 창경궁에 문 연 우리나라 첫 박물관 #고미술 1만8000여점 소장, 일반도 관람 #고궁박물관, 유리건판 7000점 순차 공개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왕가박물관은 왕실 소장 골동서화를 공개하기보다 그 당시 시장에 나돌던 유물을 구매하거나 기증 받아 소장·전시하는 쪽이었다고 한다. 1912년 기록에 소장품이 1만2230점에 달했다고 전한다. 구체적으로 불상, 금공, 석공, 목조, 칠기, 자수 및 직물, 도기, 기와, 유리, 회화 등을 아울렀다. 1938년 덕수궁에 신식 미술관(이왕가미술관)이 지어지자 폐관했는데 최종 유물은 1만8687점이었고 이 가운데 고미술품 1만1000여점이 이왕가미술관으로 넘어갔다. 이왕가미술관 소장품은 광복과 한국전쟁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대부분 이관됐다.

한 세기 전 일제가 설립·운영한 이왕가박물관의 유물 전시 실태를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사진 16점이 25일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박물관이 2012년부터 2년간 디지털 스캔을 마치고 그간 분류작업을 해온 유리건판 사진 7000여점 중 1차 분량이다. 유리건판이란 유리판에 액체 상태의 사진 유제(乳劑)를 펴 바른 후 건조한 것으로 현대의 흑백사진 필름에 해당한다. 1871년 영국에서 발명돼 20세기 초반에 많이 사용됐다. 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이종숙 연구관은 “이들 유리건판은 다른 왕실 유물과 함께 창덕궁의 한 전각에 보관돼 있다가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이전됐다”고 설명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25일 공개한 이왕가박물관 유리건판 사진 가운데 창경궁 명정전 툇간에 전시 중인 석조 유물을 찍은 사진. 눈금을 표시한 자가 함께 한 것으로 보아 소장품 관리용도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25일 공개한 이왕가박물관 유리건판 사진 가운데 창경궁 명정전 툇간에 전시 중인 석조 유물을 찍은 사진. 눈금을 표시한 자가 함께 한 것으로 보아 소장품 관리용도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25일 공개한 유리건판 사진 가운데 명정전 내 진열됐던 중국 불비상을 찍은 사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25일 공개한 유리건판 사진 가운데 명정전 내 진열됐던 중국 불비상을 찍은 사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그간 학계에선 각종 기록을 근거로 이왕가박물관이 창경궁 전각마다 유물 종류를 달리해 전시했다고 봤다. 정전인 명정전 내부와 명정전 뒤쪽 툇간(退間·건물 바깥에 추가로 기둥을 세워 붙여 지은 공간)에 석조 유물을, 함인정과 환경전·경춘전에는 금속기와 도기·칠기류 유물을, 통명전과 양화당에는 회화 유물을 전시하는 식이었다. 1911년 옛 자경전 자리에 건립한 신관 건물에는 금동불상과 나전칠기·청자와 같은 이른바 명품 유물을 전시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번에 공개된 사진을 보면 명정전 내부엔 팔부중상(八部衆像) 조각이 있는 석탑 기단부 면석과 금동불상, 중국 불비상(佛碑像) 등이 전시돼 있다. 불비상이란 돌을 비석 모양으로 다듬고 다양한 종류와 형태의 불상을 부조로 새긴 조각상이다. 각 사진들로 볼 때 총 9점의 불비상이 명정전 전면 창호의 바로 안쪽에 진열된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따르면 이왕가박물관은 이들 불비상을 1916년에 구입했는데, 현재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종숙 연구관은 “각 유물 앞 숫자는 소장품 번호로 추정되며 일부 유물에 눈금이 표시된 자가 함께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소장품 관리용으로 촬영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촬영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1916년에서 1938년 사이로 추정된다.

또다른 사진에선 조선시대 해시계인 간평일구·혼개일구(簡平日晷·渾蓋日晷, 보물 제841호)가 소장품 번호로 추정되는 ‘3705’와 함께 보인다. 뒤쪽에 놓인 석조 유물은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複刻天象列次分野之圖 刻石, 보물 제837호)으로 추정되며 유물 측면에 ‘3703’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의 소장품인 강서삼묘(江西三墓) 축소 모형을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 모형 앞에 놓인 ‘4199’라는 숫자는 소장품 번호로 보인다. 눈금이 표시된 자가 함께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소장품 관리용으로 촬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봉분을 케이크 조각 모양으로 절단한 형태의 모형은 고구려 벽화고분 내부 구조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강서삼묘는 현재 북한 남포특별시 강서구역에 있는 3기의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크기를 따라 대묘(大墓)·중묘(中墓)·소묘(小墓)로 부른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일제강점기 이왕가박물관의 소장품인 강서삼묘(江西三墓) 축소 모형을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 모형 앞에 놓인 ‘4199’라는 숫자는 소장품 번호로 보인다. 눈금이 표시된 자가 함께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소장품 관리용으로 촬영된 것으로 짐작된다. 봉분을 케이크 조각 모양으로 절단한 형태의 모형은 고구려 벽화고분 내부 구조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강서삼묘는 현재 북한 남포특별시 강서구역에 있는 3기의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크기를 따라 대묘(大墓)·중묘(中墓)·소묘(小墓)로 부른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경성사진첩(1932년 발행)에 실린 창경원 내 동물원 사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경성사진첩(1932년 발행)에 실린 창경원 내 동물원 사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강서삼묘(江西三墓) 축소 모형을 촬영한 사진도 보인다. 봉분을 케이크 조각 모양으로 절단한 형태의 모형은 고구려 벽화고분 내부 구조의 특징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강서삼묘는 현재 북한 남포특별시 강서구역에 있는 3기의 고구려 벽화고분으로 크기를 따라 대묘·중묘·소묘로 불린다고 한다.

서양식 근대화를 앞서갔던 일본이 1876년 설립한 제실박물관은 1909년 즈음엔 대표적인 미술 역사 박물관으로 자리잡은 상태였다. 이어 개관한 이왕가박물관은 일본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가졌던 역사 인식에 크게 좌우되는 전시형태를 보였다고 한다. "시중에서 가장 값비싸게 산 고려시대와 신라시대의 도자기나 금속공예·불상 등이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조선시대 것들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었다. 이것은 조선이 점차 쇠락하여 마침내 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던 그들의 조선에 대한 역사인식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목수현, ‘일제하 이왕가 박물관의 식민지적 성격’, 『미술사학연구』 2000년 9월) 근대국가 형성에 있어서 유물을 선별하고 시각화하는 '주체'가 빠졌던 한국 박물관의 시작은 이렇게 아쉬운 뒷맛을 남긴다.

1918년 덕수궁 석조전에서 촬영된 황실 가족 모습. 왼쪽부터 영친왕,순종,고종,순종비,덕혜옹주. [사진 서울대학교 박물관]

1918년 덕수궁 석조전에서 촬영된 황실 가족 모습. 왼쪽부터 영친왕,순종,고종,순종비,덕혜옹주. [사진 서울대학교 박물관]

고궁박물관은 디지털화가 완료된 7000여 점에 대해 내용 검토가 끝나는대로 순차 공개하는 한편 내년 상반기 중엔 전국박물관소장품을 검색할 수 있는 ‘이(e)뮤지엄‘에도 전체 사진 파일과 정보를 올릴 계획이다. 이종숙 연구관은 “우리나라 초기 박물관사 연구에 널리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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