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미래세대를 위한 협력’
2020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 중 한 명인 미국의 제니퍼 다우드나 버클리대 교수가 자신이 졸업한 포모나 컬리지(pomona college)에 관해 회상한 내용 중 일부다. 열린 사고로 자연 현상과 세계에 관해 질문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 대학에서의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는 말이다.
영국, 2009년 국가 주도로 시작
젊은이들 호기심·창의성 일깨워
CEO 등 주요 기업인 700명 참여
현장 전문가 5만5000명 자원봉사
획일적 입시로 길 정해지는 한국
꿈을 소멸시키는 교육 안타까워
37년 전 멘토가 준 영감, 노벨상 이끌어
그렇다면 왜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에게 영감을 주었던 대학에 주목하는 것일까. 지난 10월 국내에서는 노벨 화학상 발표 직전 한국 과학자가 후보에 오르자 여론의 관심이 고조된 바 있다. 발표 직전까지 수상 여부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더니 결과 발표 이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수상자가 누구인지는 고사하고 대학 연구 및 교육 여건 등 미래 학문과 과학 발전 방안을 고민하거나 노벨상을 배출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 해법을 찾는 논의도 찾아볼 수 없다.
E&E 이사회 의장인 데이비드 크뤽섄크는 “다양한 직업의 가치를 이해함으로써 젊은이들이 창의적인 진로를 탐색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 캠페인을 전개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를 위해 2010년에는 각급 학교 및 대학 방문 캠페인을 진행했다. 기업인들이 교육현장을 방문해 그들이 지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 탐색하도록 했다. 어떤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점검이 아니라 좀 더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위한 취지였다. 누군가 정해 놓은 교육 사업이나 강연 활동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산업 현장에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 상호 협력하도록 변화시킨 것이다. 이 활동에는 영국 주요 기업 최고 경영자를 비롯해 700여 명 이상의 기업인이 참여했다. 지역 공립 학교와 지방 대학교도 1000여 명 이상의 저명한 연사와 연결되는 기회를 얻었다. 지속적인 자원봉사자 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2013년에는 다양한 직급의 현장 전문가 5만5000여 명이 봉사자로 등록했다. 이들은 무료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학교의 멘토로 연결되고 자신의 직업과 삶의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강단에 서기도 했다. 그 결과 약 10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중고교 80%, 초등학교 20%가 캠페인에 참여함으로써 봉사자들은 수백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다양한 직업과 역할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정 직업 강요 아닌 잠재력 발굴 도와야
매년 입시 철 대학을 선택하는 수험생들의 모습에서 진짜 꿈을 찾아보기는 힘들어진 지 오래다. 꿈이 사라진 현실 속에서 기성세대가 정해 놓은 직업군에 착하게 순응한 학생들이 점수로만 평가받고 있는 모습만 무기력하게 바라보게 된다. 저들이 꿈을 키워야 할 청소년 시절 얼마나 많은 산업과 직업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을까.
주입식 교육에 찌들어 면접과 논술시험을 치르기 위해 들어서는 대학 캠퍼스에는 “00고시 00명 합격, 00전문대학원 00명 합격” 등 문구가 선명한 플래카드가 그들을 반길 뿐이다. 올해 노벨 화학상을 받은 다우드나 교수가 경험했던 37년 전 포모나 컬리지의 생화학 강의실, 그녀가 2020년 한국 대학 강의실에 있다면 37년 후 분명히 어느 환자에게 처방전을 써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교육과 대학입시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꿈을 소멸시키면서 수많은 노벨상 후보자를 사라지도록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공공소통연구소 소장이다. 디자인 씽킹과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캠페인 개발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발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