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총체적 외교 난국에 존재감 없는 강경화 장관

중앙일보

입력 2020.10.17 00:21

수정 2020.10.17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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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도쿄에서 열린 쿼드(Quad·4자) 그룹 회의는 쪼그라들고 고립된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미국·일본·인도·호주 외교부 장관이 모인 이 회의는 중국 견제와 함께 북핵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다. 특히 일본이 “북핵은 역내에 큰 위협”이라며 논의를 주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여기에 힘을 실었고 예정했던 한국 방문은 전격 취소했다. 북핵 논의에 핵심 당사자인 한국은 빠지고 일본이 주도권을 쥠으로써 대한민국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외교 실종’의 명백한 징후다. 그 핵심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있다. 청와대가 북한을 막무가내로 감싸며 한·미동맹을 뒤흔들고, 일본과 갈등하고, 중국엔 우리의 군사 주권을 스스로 제한하는 ‘3불(不) 원칙’에 합의해줬는데도 그는 지켜만 봤다. 북한이 비무장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불태우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유엔에 문제 제기조차 하지 않았다. 주요국 대사·총영사직을 친정권 비전문가들이 장악해 외교 역량 손실이 불 보듯 해도 제동 한번 걸지 못했다.

청와대만 보는 고무도장 외교로 존재 이유 상실
능력과 소신 갖춘 새 인물 찾아 전권 부여해야

그 결과 그가 재임한 3년 반 동안 북핵 폐기는 ‘사어(死語)’가 됐고 한·미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일본과는 수교 65년 만에 최악의 관계로 전락했다. 중국은 “미국의 대중 견제에 동참 말라”며 주권 침해 수준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인권 선진국’ 이라던 국가 이미지도 옛말이다. 북한의 공무원 사살 만행을 묻고 넘어가려다 유엔 북한 인권특별보고관으로부터 정보 공개를 요구당하는 망신을 샀다. 강 장관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 부판무관을 지낸 ‘인권 전문가’이니 허탈감이 더하다.
 
세계 10위 대한민국의 외교 수장이라면 가치와 원칙을 지키면서도 현안별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고도의 전략이 있어야 한다. 특히 지금 같은 미·중 갈등 국면에선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노련하게 끌고 가는 ‘전략 외교’가 절실하다. 그러나 강 장관은 미국이 한국의 쿼드 참여를 촉구하자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일축해 고립을 자초했다. 그렇다고 중국으로부터 얻은 실익도 전혀 없다. 강 장관과 청와대의 비현실적인 줄타기 외교가 대한민국을 미·중 양쪽에서 다 ‘패싱’ 당하는 처지로 몰고 있다.
 
올해 강 장관의 해외방문은 5개국에 그쳤다. 각각 16개국을 찾은 중·일 외교 수장과 대비된다. 국내에서의 존재감 상실은 더욱 심각하다. 강 장관은 북한의 공무원 사살 직후 열린 청와대 긴급관계장관회의 개최 소식을 언론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 외교국(局)”이란 탄식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외교부는 기강마저도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 성추행 사건에 이어 주나이지리아 대사관·LA 총영사관에서도 성추행 의혹이 터져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그런데도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제 식구만 감싸며 솜방망이 징계나 모르쇠로 넘어간다. 강 장관 자신은 남편이 보란 듯 미국으로 요트 여행을 떠난 사실이 알려져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샀다. 이러니 영이 서겠는가. 독일에서 소녀상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는데 외교부가 손 놓고 바라만 봤던 것도 이렇게 부처의 기강이 무너진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능과 직무유기에다 잇단 추문으로 잠잠할 날이 없는 외교부와 강 장관에게 국민은 신뢰를 거둔지 오래다. 지위만 장관일 뿐 실권은 없는 ‘고무도장’ 장관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북핵 위협에다 미·중 갈등, 일본의 ‘보통국가화’까지 겹친 가운데 의지할 친구 하나 없는 총체적 외교 난국이다. 존재감 없고 허울뿐인 외교부 장관을 그 자리에 계속 두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능력과 소신을 갖춘 인재를 발탁하고, 제대로 일할 권한을 부여해 외교다운 외교를 회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