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존엄의 무결성(無缺性)으로 대변돼 온 북한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그만큼 북한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 김 위원장이 주민의 어려움에 공감한다는 제스처를 통해 북한 주민의 지지를 끌어내고 정상국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주려는 의도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고맙다” “감사하다” 표현만 12번
정상국가 지도자 이미지 노려
최고지도자 이례적 몸 낮추기에
태영호 “북한 그만큼 힘들다는 것”
특히 이날 김 위원장은 계속된 국가적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며 “면목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기도 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 “김정은이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밖에 찾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도 정책 실패를 인정한다는 걸 보여주며, 그만큼 북한 내부가 힘들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열병식을 10일 0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었다. 통상 열병식은 오전이나 오후 밝은 시간대에 진행해 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자정에 열병식을 진행하는 건 처음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의 심야 열병식 개최는 새로운 방식의 열병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 집권 후 북한은 열병식 때 항공기를 동원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원하는 등 매번 새로운 방식의 열병식을 추진해 왔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코로나19 등으로 다른 행사를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있자 열병식을 심야에 시작함으로써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열병식 마지막 순서로 신형 ICBM이 공개될 때 김 위원장은 단상에서 이를 내려다보고 간부들과 대화하며 활짝 웃었다. 주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했다.
심야 열병식은 대외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다. 지난 7월부터 북한의 열병식 준비 동향이 수시로 국내외 언론에 나오자 새 방식이 필요했을 수 있다. 인공위성으로 사전에 준비 상황을 서방국가들이 파악하는 걸 막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 어둠을 틈타 열병식 장소로 병력이나 무기가 이동할 경우 사전 노출 가능성이 대낮에 비해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은 미국 시간으로 9일 오전 11시에 열병식을 하고, 다음 날 오전 6시 이를 방영했다. 미국을 겨냥한 심야 열병식 개최라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미국을 직접 겨냥하거나 핵 위협을 언급하지 않았다.
정용수·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