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기념하는 심야 열병식에서 “사랑하는 남녘 동포”를 거론하면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대남 유화 메시지를 전하면서 동시에 북한의 대미·대남 핵 무력 증강을 과시했다. 김 위원장은 심야 열병식 연설에서 국제사회의 코로나19 퇴치를 기대한 뒤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는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청와대를 극렬하게 비난하며 상종하지 않겠다고 해 왔던 태도와는 180도 다르다.
열병식서 새 방사포 등 신무기 공개 #미국과 남한 동시 겨냥한 무력 시위 #김 “사랑하는 남녘 동포” 메시지
그러면서 북한이 이날 보여준 건 북한 무기의 세대교체다. 북한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 등이 전한 열병식 장면에 따르면 신형 ICBM은 기존 화성-15형(사거리 1만3000㎞, 탄두 중량 1t)과 비교해 직경과 길이가 커져 사거리가 늘고 탄두 중량도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미사일을 싣고 이동하는 발사대(TEL) 바퀴 수도 기존 9축(18개)에서 11축(22개)으로 늘었다. 북한 전문매체인 38노스는 이번에 공개된 ICBM을 화성-15형과 비교해 “길이는 4~4.5m, 직경은 0.5m가량 더 큰 화성-16형으로 추정된다”며 “이동식 ICBM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이즈”라고 분석했다.
이례적 심야 열병식 … 신형 SLBM 추정 북극성-4A도 등장
“이 미사일은 괴물”(멜리사 해넘 스탠퍼드대 연구원)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신형 ICBM은 탄두 형태로 볼 때 ‘다탄두 탑재형’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거리를 확장했다면 뉴욕과 워싱턴 동시공격이 가능한 수준일 수 있다는 얘기다. 단 고체연료가 아닌 액체연료 미사일로 추정됐다.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북극성-4A형도 공개했다. 진수가 임박한 것으로 보이는 3000t급 잠수함(로미오급 개량형)이나 북한이 새롭게 개발 중인 신형 잠수함(4000~5000t급)에 탑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형상만 보면 북극성-4A형은 중국의 다탄두 SLBM 쥐랑-2(사거리 7000~8000㎞)와 유사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열병식에선 또 기동성과 화력이 뛰어난 미 육군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닮은 장갑차 2종이 각각 115㎜ 전차포, 대전차 미사일을 장착한 채 등장했다. 미 육군의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연상케 하는 신형 전차도 공개됐다. 그간 시험발사 등으로 꾸준히 개량했던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와 ‘에이태큼스(ATACMS)’ 탄도미사일, 초대형 방사포(다연장로켓포) 등도 열병식에 나왔다. 김 위원장은 열병식에서 “우리의 군사력은 우리의 시간표대로 질과 양이 변해 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각종 로켓에 정밀유도장비를 갖추는 등 야전 포병의 정밀타격 능력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보인다”며 “한반도 전구 내에선 어디든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열병식에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초대형 ICBM을 놓고 일각에선 실제 완성도와 실전 배치 여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이 정도라면 TEL에선 발사할 수 없고 지하 사일로(고정형 발사대)에 넣어야 한다”고 추정했다. 38노스도 “실제 개발보다는 정치적 선언 전략에 가까울 것”이라며 “전형적인 ‘흐루쇼프 전략’(1950~60년대 소련이 핵무기 위력을 과장하기 위해 구사했던 위장전술)”이라고 지적했다. 뭐가 됐건 북한이 초대형 ICBM을 공개한 건 “언제든 ICBM 도발 국면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대미 압박으로 풀이된다. 거대 ICBM을 보여준 건 일종의 ‘맛보기’였고, 미국 대선 이후 실제 신형 ICBM 시험발사라는 ‘본 게임’에 나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상진·이유정·박용한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