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유산 받고 멀리할 내 자식 아냐” 는 ‘고양이 심리’

중앙일보

입력 2020.09.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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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8)

요양보호기관에 기거하는 어르신을 위해 놀이기구 몇 개 만들어 완성하는 순간 얼굴에 미소가 배시시 번진다. 이 놀이기구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실 어르신을 떠올려 본다. 대수롭지 않게 버려진 물건으로 대단한 실력도 아닌 재주로 어르신을 즐겁게 해 드릴 수 있다니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행불행도 달라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해양쓰레기를 이용해 어르신들을 위한 북을 만들어 보았다. 별 소용없고 별 재주없어도 타자를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감을 느껴본다. [사진 한익종]

 
아울러 많은 것이 바뀐 인생 후반부에서는 관점의 변화, 태도의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오래전 직장생활을 할 때 판매조직을 대상으로 강의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어떤 것이 100점 만점의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인가에 대한 강의였다.
 
영어 A로부터 Z까지 각 문자에 A는 1, B는 2, C는 3, ~ Z는 26의 숫자를 매긴 후 더해 100점이 되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단어를 말해 보라고 주문했다. 어떤 이는 'LOVE(사랑)', 어떤 이는 'POWER(권력)', 지식을, 돈을, 명예를 들었다. 정답은 'ATTITUDE(태도)'이다.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자세로 사는가에 따라 100점짜리 삶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삶이 될 수도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강의였다.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면서도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한치의 변함이 없다. 삶을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극명하게 달라진다. 경제적으로 부유치 못해 기부나 봉사를 못 한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버려진 물건을 갖고,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외로운 어르신을 위한 놀이기구를 만들어 그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너무 행복해진다. 태도를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삶이 확 달라진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유아시절 심한 질병으로 시각과 청력을 잃어 '불행한 삶을 살았겠지' 여겨지던 헬렌 켈러가 “나는 내 앞이 온통 캄캄한 어둠인 줄 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찬란한 태양이 나를 비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라고 말한 뒤 자신의 삶의 자세를 바꿨다는 일화를 통해서도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보람찬 삶, 행복한 생활이 이뤄진다는 걸 알 수가 있다.
 
인생후반부 행복한 삶, 보람찬 삶을 위한 자세는 어떤 것일까 자문자답해 본다. 수많은 사례와 경험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삶을 어떻게 관조하고 행동할 것이냐는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효과적인 게 ‘함께 살아가겠다’라는 태도다. 자신과 자기 가족만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것을 도외시하는 사람의 말로를 우리는 무수히 지켜봐 왔다.
 
자신의 욕심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겪는 몰락은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쇼펜하우어가 “인간은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는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라고 한탄한 그대로를 답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자기만의 욕심을 위해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그런 태도의 결과는 파멸일 뿐이다. 그를 빤히 지켜보면서도 자기의, 자기 가족만의 행복한 삶을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욕심의 끝이 파멸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을 나는 아닌, 남의 일로만 치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나만을 위해 쌓아 놓은 부는 나를, 내 자식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동네의 몇몇 사람과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부 쌓기에 급급하고, 그렇게 해서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자신을 공경하고 부양을 더 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유산을 물려받은 자식이 부모를 등한시하고 멀리하는 사례를 얘기해 줬더니 자기 자식은 절대로 그런 애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단적으로 자기는 아니라는 ‘고양이 심리’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고교생을 위한 환경, 봉사, 창작이 어우러진 교실을 열어 강의, 실습을 진행하는 모습.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에게 함께 사는 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해 본다. [사진 한익종]

 
얼마 전 서울의 모 대학교수가 서울 시내에 있는 남자 대학생을 대상으로 아버지가 몇 세에 돌아가셨으면 적당하겠냐고 물었더니 47%가 63세라고 답했다.다시 아버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돈’이라는 대답이 절반을 넘었다는 설문 조사결과가 있었다. 이를 두고 기가 막힌 현실이라고 통탄해야 하나 아니면 우리 세대가 만든 자업자득이라고 한탄해야 하나.
 
우리의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남도 변하지 않는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온 우리에게서 자식이 배우는 자세는 역시 자신만을 위한 삶, 부모도 돈 앞에선 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시간이 된다면 요양기관에 기거하시는 어르신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해 보자. 그리고 그곳에 계신 어르신과 얘기를 나눠 보기 바란다. 이 문제에 관해 어떤 답이 나올지는 숙제로 남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으려고 모두가 조심하는 가운데 파티를 열고 심지어 누가 먼저 걸리나 내기를 한 미국의 젊은이가 결국 사망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남긴 얘기가 소개된 바 있다. “내가 실수했습니다.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다”였다. 함께, 모두를 위해 살아가겠다는 대열에서 벗어나 나만, 내 주위만 괜찮으면 된다는 태도가 결국은 파멸로 이르게 한 사례다.
 
인생후반부를 살아가며 후회하는 삶을 예방하는 길, 인생후반부를 행복하고 보람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은 과거의 투쟁적 삶, 나만 위하는 삶의 자세에서 벗어나 함께 하는 삶,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사는 자세를 택하는 것이다. 이웃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함께 하겠다는 자세를 취해보자. 주고서도 더 큰 것을 받은 것 같은 만족감,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행복함, 나아가서는 내가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자존감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 않아도 내가 이웃을 위해, 소외된 어르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행동이 나를 무척 행복하게 한다. 인생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함께 살아가는 데 내가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자세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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