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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인생 3막 직업 선택 땐 자존감을 최우선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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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5)  

오랜만에 통화를 한 선배와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다가 내 요즘의 생활을 얘기했더니 대뜸 ‘당신 와이프한테 잘 보여야겠다. 얹혀살려면’ 한다. 순간 머리가 띵해진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창궐 이후 내 여행사업이 침체에 빠져 생활비를 아내가 충당하고 있으니 맞는 말이긴 한데 언뜻 기분이 묘해졌다. 불쾌한 기분으로 그냥 웃으며 “그러게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아내에게 고마운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내 고마움은 조금 다른 면에 있다. 나는 인생후반부의 삶을 함께하는 삶이라 정의하며 거기에 맞게 직업은 경제적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자존감과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직업이어야 한다고 말해왔다. 만일 아내가 요양보호사, 보건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고 전업주부로만 있었다면, 혹은 노인보호시설에 다니기는 하지만 매일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고 했다면 내 논리는 새빨간 거짓말이 됐겠다는 생각에서다. 내 지론을 증명해 주는 아내가 더없이 고맙고 예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내 재능기부에도 변화를 주었다. 직접 어르신들 놀이용 해녀퍼즐을 만들어 요양기관에 전달했다. [사진 한익종]

신종코로나바이러스는 내 재능기부에도 변화를 주었다. 직접 어르신들 놀이용 해녀퍼즐을 만들어 요양기관에 전달했다. [사진 한익종]

4차산업 혁명과 함께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은 인간의 미래 직업 논의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다. 더구나 은퇴 후 인생 3막을 열어가는 노년기의 직업에 대해서는 과거의 사고로부터 완전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인생 2막인 직장생활의 직업에 대한 가치가 경제적 욕구나 명예, 지위의 충족에 있었다면 30~40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인생3막에 무언가는 해야 하는 현실에선 다른 가치를 추구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도전에 봉착했다. 그러고 보면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비례적으로 적용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현실의 요구이건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요구이건 간에 가장 큰 시대적 요구는 기계적 노동에서 감성적 노동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세대를 불문하고 닥친 요구지만,노후의 직업에선 더 큰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한다. 노후에 직업관이 변하지 않으면 현실의 보상은 자신이 기대하는 수준에 턱없이 모자라는 불행한 노후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컴퓨터가 대신하게 됐고, 사람이 필요한 분야에서 기계가 대신해도 문제가 안 되는 시대가 됐으니 이제 인류는 직업에 대한 심각한 고민과 함께 본질적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사회 전체뿐만 아니라 개인도 그렇다. 그것도 남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말이다.

특히 자신이 하던 일을 젊은이가 차지하고 거기에 기계가 대신하는 현실을 노후세대는 더욱 절실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생 2막인 직장 생활에서 가치의 1순위를 두었던 경제적 보상, 지위 명예의 추구는 직장 은퇴 후인 인생3막에선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아니 추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불가능에 연연하는 삶은 불구덩이로 날아드는 불나방과도 같으니 결과는 뻔하다.

해녀노래부르기 공연을 하는 차귀도해녀들. 대부분이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 표정들이 밝다. [사진 한익종]

해녀노래부르기 공연을 하는 차귀도해녀들. 대부분이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 표정들이 밝다. [사진 한익종]

그렇다면 인생후반부에 AI(인공지능)와 새로운 지식과 능력으로 중무장한 젊은이와의 경쟁을 피해 나만의 블루오션을 만드는 비책은 무엇인가? 내 자존감을 지키며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직업, 바로 재미와 기여를 충족시키는 직업관으로 전환하는 일이다. 다행히 이제 우리 사회에도 인생후반부에 재미와 자존감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직업이 많이 창출됐다. 욕심을 버리고 왕년을 잊기만 하면 된다.

아내는 요즘 노인요양보호기관으로 출근하며 마치 놀이터로 나가는 소녀와 같은 명랑함을 드러낸다. 퇴근할 때는 개선장군 같이 득의만면이다. 그 이유를 안다. 즐거움과 자존감을 충족시키는 업을 택했기 때문이다. 내 아내가 택한 직업이 사회적 필요에 부응한다는 자존감과 어르신을 돌보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고 즐거워하는 기분이 유지된다면 60 넘은 나이는 부담되지 않으며, 오랫동안 직업을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걸 나는 확신한다.

이웃에 기여하고 사회에 봉사하면서 함께 살아가겠다고 작정한 삶을 살겠다면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마지막 유언으로 한 자신만을 위했던 삶에 대한 후회나 알리바바의 마윈이 다시 태어난다면 돈을 벌기 위해 죽기 살기로 살았던 삶을 다시는 살지 않겠다는 회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해서 그런 후회를 했던가? 내 비록 인생을 다 살지는 않았지만, 이웃과 함께하며 자신이 재미있어 하고 자존감을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각색된 묘지명이지만 버나드 쇼의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영부영하다가 결국은 이렇게 됐다’라는 후회는 남기지 않을 삶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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