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인생 후반부에 아저씨란 호칭이 달갑지 않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2020.08.26 09: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56)

어느 날 제주 환상 자전거길을 걷는 데 한 무리의 부인들이 사진을 찍다가 내가 다가가니 사진을 부탁한다. 그런데 처음 말을 꺼낸 여인의 말이 ’아저씨한테 한장 부탁하자“ 였다. [사진 pxhere]

어느 날 제주 환상 자전거길을 걷는 데 한 무리의 부인들이 사진을 찍다가 내가 다가가니 사진을 부탁한다. 그런데 처음 말을 꺼낸 여인의 말이 ’아저씨한테 한장 부탁하자“ 였다. [사진 pxhere]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아빠가 부르실 땐 두꺼비, 엄마가 부르실 땐 꿀돼지, 누나가 부를 땐 왕자님~ 랄라랄라랄라 ~” 동요 ‘내 동생’의 가사이다. 나 자신은 하나인데 불리는 호칭은 여럿임을 생각하며 흥얼거려 본다. 어느 날 제주 환상 자전거길을 걷는 데 한 무리의 부인들이 사진을 찍다가 내가 다가가니 사진을 부탁한다. 그런데 처음 말을 꺼낸 여인의 말이 “아저씨한테 한장 부탁하자” 였다.

순간, 내 마음을 휩쓰는 싸늘함이란. 아저씨라는 호칭이 뭐 대수냐라고 여겼지만, 막상 듣고 보니 별로 기분 좋은 호칭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사진을 찍던 여인이 “선생님, 사진 한장 부탁드려도 될까요?”였다. 이 얼마나 예쁜 부탁인가? 순간 ‘I’m sorry’가 ‘Why not ’이 되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과 함께 호칭의 위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오래전 직장생활 때 “형식에 너무 치우치지 말라. 그러나 형식이 실질을 좌우하는 경우도 있으니 형식을 완전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부하직원들에게 교양강의를 하던 것이 생각난다. 호칭은 형식이다. 그러나 형식인 호칭이 어느 때에는 그 사람의 실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특히 이 호칭이 은퇴 후 생활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되고 호칭의 역할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면서부터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아졌다. 남성은 나이가 들면 ‘꼰대’라는 호칭에 매우 신경을 쓰게 된다. 내 견해로는 비속어인 꼰대의 일반명사가 아저씨가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아저씨라는 호칭이 어떤 면에서는 나 자신의 존재감을 허물어 버리는 용어로 받아들여지니 별로 듣고 싶은 호칭은 아니다.

그런데 은퇴 후 나이가 들어가면서 남자가 자주 듣는 호칭이 아저씨이니 어떻게 하면 이 운명에서 벗어날꼬? 물론 일반명사 아저씨가 상스러운, 비하하는 호칭은 아니지만 꼰대라는 이미지를 담는다면 듣기 싫은 호칭임엔 틀림이 없다. 인생전반부인 직장생활 동안 사장님, 과장님, 부장님, 회장님으로 불리던 사람이 은퇴 후 어느 순간부터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면 불쾌해하거나 자존심 상해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어떤 면에선 형식인 호칭이 실질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그리고 나도 그 호칭이 뭐 대수냐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형식인 호칭이 대우의 문제를 떠나 자신의 행동양식과 노후 생활까지도 좌우한다는 사실은 결코 간단히 무시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예전에 예비군 훈련을 받을 당시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었다. 사회적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나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왜 행동이 막 나가는 것일까? 바로 예비군복이라는 형식이 개인의 인격이라는 본질을 갈음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논리로 어떤 호칭을 듣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이나 삶의 양태도 달라진다. 그런 점에선 다행스럽게도 나는 인생전반부인 직장생활에서 들었던 직책과 직위에 따른 호칭보다 은퇴 후에 보다 격상된(?) 호칭을 듣고 있다. 회장님, 대표님, 사장님, 위원님, 고문님, 작가님, 선생님, 강사님, 심지어는 한국인 조르바로도. 아무리 호칭에, 형식에 치우치지 말자고 다짐을 해도 아저씨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이런 호칭이 더 매력적으로 들리는 걸 보면 나도 유치하기까지 한 일개 범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도 호칭에 대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런 호칭이 내 향후의 행동과 사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내가 기성세대를 비아냥거리는 호칭인 꼰대의 일반명사인 아저씨라고 불릴 때의 내 생활을 상상해 본다. 이 경우의 아저씨가 고루한 행태, 별 역할연기 없는 그런저런 사람, 젊은이에게 지적질이나 일삼는 사람, 자신을 대우해 줄 누군가가 없나 기웃거리는 사람 정도로 치부하면 불쾌해지기까지 한다. 확실히 다르다. 어떻게 불리냐에 따라 행동거지가 달라질 것이다.

제주에 내려온 지 조금 시간이 지나 마을 이장은 우리 부부의 별명이 ‘인사 잘하는 부부’라고 알려주었다. 그 이후 우리 부부는 인사를 더 잘하게 되더라. [사진 pixabay]

제주에 내려온 지 조금 시간이 지나 마을 이장은 우리 부부의 별명이 ‘인사 잘하는 부부’라고 알려주었다. 그 이후 우리 부부는 인사를 더 잘하게 되더라. [사진 pixabay]

제주에 내려온 지 조금 시간이 지나 마을 이장이 내게 우리 부부의 별명이 뭔지 아냐고 물어 왔었다. 우리 부부의 별명이 뭐냐고 반문했더니 ‘인사 잘하는 부부’란다. 그 이후 우리 부부는 인사를 더 잘하게 되더라. 호칭은 단지 호칭이 아니다. 호칭은 그 사람의 역할 연기를 보여주는 가늠자이다. 어느 그룹에서 직위에 상관없이 호칭을 모두 버리고 이름 뒤에 ‘님’자를 붙이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평등, 자율, 창의적 사고, 권위의식에서의 탈피라는 측면에서는 일견 동의하지만, 그 사람의 역할, 기여라는 측면에서는 반대다.

어떻든 대부분의 경우 인생 후반부 호칭은 단출하고 일반적일 수밖에 없다. 그저 평범한, 혹은 별 소용이 없어진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가진 일반명사로. 이렇게 불리는 것에 괘념치 않겠다는 사람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런 일반명사로 불리는 것에 대해 자존감의 박탈이나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등으로 말 못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많다. 만일 꼰대적 이미지를 갖는 아저씨로 불리기 싫으면 그 방법은 무엇일까.

아저씨와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된다. 뭔지 모를 기가 풍기는 호칭, 존경의 의미를 내포한 호칭을 얻을 방법은 여러 가지다. 내 경험에 의하면 꼰대의 이미지를 갖는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을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웃에 대한 봉사와 사회에 대한 기여, 그리고 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생활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행동하면 된다. 내가 상대편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주면 상대는 절대로 아저씨라는 참 애매모호한 호칭은 쓰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체득하게 됐다.

뭐라 불리든 그까짓 게 뭔 대수냐라고 한다면 자신만을 생각하고 자기만을 위한 행동을 계속하면 된다. 자, 선택은 내 몫이다. 꼰대라는 이미지에 가까운 아저씨,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존경과 사회의 어른이라는 의미를 담은 이름으로 불리기를 바라는지는. 그 갈림길엔 공유, 봉사, 기여라는 삶의 자세가 지키고 있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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