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을 내는 것처럼 두근거립니다.”
정식 출간 사흘 전인 22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절필한 게 독립운동 같은 게 아니고 그 4년 동안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됐다”며 웃었다. “20대 땐 불의한 권력에 시(詩)로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시를 포기함으로써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자세를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몇 년 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 그게 해소가 되고서 처음 시를 발표할 때 ‘야, 괜히 혼자 오기 부린 것 아냐?’ 생각되기도 하고, 뭔가 달라진 것도 보여줘야 하는데 부담감이 굉장히 많았다”고 돌이켰다.
‘연탄재 시인’ 안도현 8년 만의 시집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절필 철회
30년 넘게 시 써보니 “작은 것의 가치”
“1980년대에 20대를 보내면서 시 쓰는 제 머릿속엔 늘 민주화, 통일, 노동해방 이런 개념이 너무 많았다”는 그가 이번 시집에선 그런 “커다란 것들”은 싹 걷어냈다. “살아보니까 작은 것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 좀 더 작고 느린 것의 가치를 시로 써보는 게 중요하더라”면서다. 시인으로 30년 넘게 살며 배운 것이란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
시집 제목은 자연에 영감을 받아 엮은 짧은 시 연작 ‘식물도감’ 한 구절을 따왔다. “변산반도의 한 펜션에 갔는데 능소화가 이층 창가까지 올라와 바다를 향해 꽃을 피운 모양이 마치 작은 악기 하나를 창가에 걸어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서 “식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식물이 사람 못지않다. 사람보다 시간도 더 빨리 알아채고 미래도 더 빨리 예측하고 영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삶의 환경 바뀌면 시도 바뀐다
유년기 노닐던 내성천 강변 마을로 돌아간 지금은 “시 쓰는 일이 몸 움직이기보다 훨씬 쉽더라. 야, 나는 손이 하얀 서생이구나” 하며 돌담 쌓고 나무 심고 꽃밭‧텃밭 일구며 지낸다고 했다.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 드넓은 은모래 백사장이 4대강 사업의 하나로 상류에 영주댐이 만들어지면서 풀과 나무가 무성한 곳이 되고 말았다” 한탄도 했다. 요즘은 “경제적‧문화적으로 소외된” 고향 예천을 알리려 ‘예천산천’이란 계간잡지를 내고 고등학교 문예반에 나가 “세상을 보는 밝은 눈”을 가르치곤 한다고 했다.
오래 살아온 분들의 삶 자체가 시죠
지금의 마음가짐으로 20대로 되돌아간다면 그때와 다른 시를 쓰게 될까. “돌아갔을 때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이 전두환이라면 똑같은 방식으로 20대를 살아야 되겠죠. 그렇지만 그런 악순환은 되풀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고요.” 잠시 말을 고르던 그가 이야기를 이었다. “세상이 태평성대라면 시인들은 별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 다들 잘 먹고 잘살고 부유하고 풍요로운데 시가 뭐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면서 ‘겸손’을 강조했다. “요즘 속에 많이 들어오는 말 중의 하나가 ‘겸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동식물 만날 때도 좀 더 겸손하게 봐야겠다는 거예요. 강이나 바다 앞에서도 인간으로서 겸손하게 대해야겠다, 생각 많이 하거든요. 위축된 건 아니고요. 좀 더 겸손하게 그렇게 살아야죠.”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