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회사는 건강기구 회사 '저팬 라이프'다. 저팬 라이프 전 회장 야마구치 다카요시(78) 등 10여명은 사기 혐의로 지난 18일 체포됐다. 일본 내에서 이들이 피해를 준 금액만 2000억엔(2조2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이니치 "홍콩서도 2000명 투자자 울려"
"아베총리 초청장 받았다"며 소비자 현혹
그러나 믿고 산 기기에는 효능이 없었다. 20일 일본 ANN에 따르면 야마구치 다카요시 전 회장은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뇌경색을 예방한다"고 고객을 속여 치료기기에 투자할 것을 권했다.
저팬 라이프는 일본 소비자청으로부터 일부 업무 정지 명령을 받은 뒤 2017년 파산했지만, 고객들의 환불 요구를 묵살했다. 20일 TBS에 따르면 야마구치 전 회장은 고객들의 항의와 반환 요구가 잇따르자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각 지점에 배포했다. 체포된 마쓰시타 마사키 전 이사는 "환불을 막아낸 직원에게는 '수당'이 지급됐다"고 증언했다.
마쓰시타 전 이사는 "손님의 환불을 막아내면 장려금이 나온다는 소리를 듣고 정말 이 회사는 썩었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환불은 야마구치 전 회장의 결재가 필요했기 때문에, 경시청은 야마구치가 사기를 주도했다고 보고 조사하고 있다.
20일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저팬 라이프는 고객에게 회사 경영상태를 알리는 보고서도 장난질을 했다. 2014년~2017년 결산 서류에 따르면 실제로는 채무 초과(부채가 자산보다 많음) 상태였는데도 경영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숫자를 조작했다. 2014년의 경우, 순 자산을 47억엔으로 썼지만, 사실은 204억엔의 채무 초과였다. 2017년 순 자산을 40억엔으로 적었지만, 실제 338억엔의 채무 초과였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조희팔이 다단계 의료기기 대여 사기를 친 적이 있다. 조 씨는 의료기기 대여로 수 십%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3만명에게 4조원을 가로챘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사기라고 세간이 떠들썩했다.
홍콩에서도 2000여명 당해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홍콩 법인은 2000명 이상의 계약자를 두고 있었다. 이들의 피해 추정액은 약 2억 홍콩 달러(약 300억원)에 달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2017년 이후 저팬 라이프 홍콩 지점에서는 '배당이 안 나온다'는 고객들의 문의가 있었다"면서 "이때 간부들은 이미 홍콩에서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고객들은 손해를 입는 동안, 경영진은 돈을 제 주머니에 넣었다. 구속된 전직 회장과 가족은 회사가 파산하기 직전까지 월 300만엔(3300만원)~350만엔(3900만원)의 보수를 꼬박꼬박 챙겼다.
20일 일본 FNN 방송은 야마구치 전 회장은 파산 직전인 2017년 월 350만엔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야마구치의 딸이자, 전 사장인 야마구치 히로미도 같은 시기에 월 300만엔(33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일본 경시청은 저팬 라이프의 간부가 경영 악화를 뻔히 알면서도 고액의 보수를 계속 받고 있었다고 보고, 방만한 경영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FNN 방송은 덧붙였다.
한편 저팬 라이프 전 회장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신뢰를 얻은 초대장은 공교롭게도 아베 정권 말기에 논란이 된 '벚꽃을 보는 모임' 초대장이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아베 전 총리는 "(저팬 라이프 전 회장과)1대1 형태로 만난 적 없고 개인적인 관계가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