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베 '벚꽃모임' 초대장에 당했다, 2조원 사기당한 은퇴 1만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의 친분을 내세우며 2조원대의 투자금을 끌어모은 사기단이 경찰에 체포됐다.

건강기기에 투자하면 연 6% 배당금 준다 속여 #고령자 등 1만여명에게 2조 3000억원 사기쳐 #'벚꽃 모임' 초대장 보여주며 아베와 친분 과시 #아베,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이" 관련 부인

건강기구 판매업체 '저팬 라이프'의 야마구치 다카요시 전 회장일 경찰에 체포돼 집을 나서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건강기구 판매업체 '저팬 라이프'의 야마구치 다카요시 전 회장일 경찰에 체포돼 집을 나서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경시청은 18일 고배당을 약속하며 사업에 투자하도록 한 뒤 돈을 가로챈 혐의로 건강기구 판매업체 '저팬 라이프'의 야마구치 다카요시(山口隆祥·78) 전 회장 등 14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옷이나 이불, 목걸이에 자석을 넣어 '자기(磁気)치료기'라고 광고하며 투자자를 모았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제품의 소유주가 되면 다른 사람에게 기기를 렌탈해 연간 렌탈료 명목으로 6%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고 속였다. 이같은 투자 방식은 일명 '오너 상법'(Owner 商法)으로 불린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이번 사기의 피해자는 전국에 약 1만명, 피해액은 2100억엔(약 2조 3천억원)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주로 은퇴 이후의 고령층이었다.

저팬라이프는 고액의 부채를 숨기고 투자자를 유치한 것으로 드러나 네 차례나 소비자청으로부터 업무정지 명령을 받았지만, 법망을 피해 수년간 영업을 계속했다. 회사는 2018년 파산했는데, 파산 직전인 2017년에도 일본 전역에 80개 점포를 운영 중이었다.

이들은 노인들을 불러모아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 야마구치 회장은 이 자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아베 총리에게 '벚꽃을 보는 모임'의 초대장을 받았다며 이를 화면에 띄워 보여주거나, 정재계 유명인사의 사진이 들어간 전단지를 배포하는 식이었다.

지난해 4월 신주쿠교엔 (新宿御苑)에서 개최된 '벚꽃 보는 모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지지통신]

지난해 4월 신주쿠교엔 (新宿御苑)에서 개최된 '벚꽃 보는 모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지지통신]

야마구치 회장은 참석자들에게 "노인을 위해 아주 좋은 사업을 한다며 후생노동상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팬라이프에 자신의 전재산인 약 8000만엔(약 8억 9000만원)을 투자한 가나가와(神奈川)현의 한 여성(79)은 마이니치 신문에 "아베 총리과 관료들이 광고에 나와 믿음을 갖게 됐다"며 "노후 저축과 손주 교육자금을 다 뺐기고 빈털터리가 됐다"고 말했다.

'벚꽃을 보는 모임'은 일본 총리가 매년 봄 각계 인사를 불러 개최하는 행사다. 국가 예산으로 치러지는 이 행사에 지난해 아베 총리가 자신의 지역구 인사들과 후원자들을 다수 불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벚꽃 스캔들'로 번지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는 작년 12월 국회에서 저팬라이프 관련 질문을 받고 "야마구치 회장과 일대일로 만난 적이 없고, 개인적인 친분도 없다"며 이 회사 영업에 자신 명의의 초대장이 활용된 것은 본인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