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탄핵 찬성 원죄 어찌 씻었나...‘조국2’ 추미애의 ‘참회 16년’

중앙일보

입력 2020.09.10 05:00

수정 2020.09.10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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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추미애,조순형 새천년민주당 공동대표, 정범구 대변인(왼쪽부터)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개혁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장문기 기자

 
#1. 2004년 3월 11일. 새천년민주당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 찬성했다. 원래 탄핵 반대였던 그는 노 대통령 기자회견을 보고 “대통령의 사과는 구체적 내용이 결여됐다”며 결심을 바꿨다.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고, 새천년민주당은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삼보일배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그해 4월 총선에서 참패했다.
 
#2. 2015년 12월 13일.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을 했다. 문재인 대표와의 노선 충돌이 이유였다. 사흘 뒤 비주류 동반 탈당 움직임이 일자 추미애 최고위원이 한 말이 이랬다. “보고 싶지 않은 데자뷰를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다. 2003년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 상처가 지지자들에게 아직도 남아있다. 당시 분당을 막지 못해 저 자신이 삼보일배로 사죄드린 그 심정으로 지지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께 사죄 올린다.”
 
추미애의 결별은 반복되지 않았다. 노무현에 등돌린 그는 11년 뒤 문재인을 앞장서 지켰다. 9일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한 측근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였던 시절 극심했던 친문-비문 갈등 속에서 추 장관이 ‘끝까지 문 대표를 흔들면 안된다’는 목소리를 매일같이 냈다”며 “문 대통령이 추 장관을 신뢰하게 된 계기가 이 때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취임 직후 현충원 현충탑에 참배를 마치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추 장관 아들 서모(27)씨의 군 휴가 특혜 의혹과 관련해 야권에선 “토사구팽이다. 문재인은 모양새 좋게 추미애를 손절하는 방식을 고민 중일 것”(전여옥 전 의원)이란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청와대가 추 장관을 경질할 것이란 징조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탄핵에 가담했던 인물이 문재인 정부에서 권력의 핵심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장시간에 걸친 치밀한 변신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참회 16년

1995년 DJ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추 장관은 동교동계가 정치적 뿌리다. 올 1월 장관 임명 때도 “원조 친문은 확실히 아닌 사람”(민주당 중진)으로 분류됐다. 한 친문 인사는 “추 장관은 2016년 당대표 출마 때도 친문 실세 전해철 의원을 만나 거의 울먹이며 ‘노무현 탄핵 찬성은 내 과오’라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탄핵 찬성이라는 진영 내 원죄를 벗어나고자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전언이다. 앞서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의 첫 정치적 조우는 노 전 대통령 사망 3년 뒤인 2012년이었다. 추 장관은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 캠프의 공동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아 전국 지원유세를 다녔다. “티나지 않는 자리인데 TK(대구·경북) 중심으로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후보 본인 발길 안 닿는 곳을 다 훑고 다녔다.”(전직 보좌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당시 대통령 후보가 2017년 대선 때 중앙선대위 회의에 참석해 추미애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20170505

 
전략적 제휴로 시작된 고마움이 당 대표(문재인)-최고위원(추미애) 관계를 거치며 상호 유대가 깊어졌고, 이는 추 장관의 당대표 당선에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민주당 재선 의원은 “추 장관은 당대표가 됐을 때 친문 인싸(핵심)들의 ‘내 편 검증’을 한 차례 통과한 셈”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대선 선대위원장을 맡아 문재인 ‘킹메이커’ 이미지까지 얻으려 했다”고 평가했다.
 

남는 의문

당시 민주당 중진들 사이에선 여전히 “2016년 전당대회 때 친문은 김상곤, 이종걸 등 비문 후보 일색 와중에 최선 아닌 차선으로 추미애를 선택했다”는 말도 나온게 사실이다. 법무부 장관 임명을 앞두고도 지난해 말 청와대 안팎에서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후임으로 추미애 의원을 3순위에 놓고 검토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원래 여권내 하마평에선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이 추 장관보다 우선순위였다. 어쨌든 추 장관이 ‘진성 친문’까진 아니더라도 문 대통령 곁에 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탄핵의 ‘흑역사’를 탈색하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애초부터 당정 안팎에선 추 장관의 정치 이력보다는 그의 개인 캐릭터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그는 정권 초반 문 대통령에 “당 대표에게 장관 후보 추천권을 달라”고 요구해 당청 간 대립각을 세웠던 전례가 있다. 당대표 때 독단적 결정이나 돌출행동이 잦아 친문 조직에서 “역시 사람은 안 변한다”고 혀를 내둘렀다는 말도 나온다. 2009년 야당 소속 국회 환노위원장 시절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같은 야당 의원들을 회의장에서 몰아내고 여당 의원들과 개정안을 통과시킨 건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사례다.
민주당의 수도권 4선 의원은 “지금도 옆에 국토부 장관이 버젓이 있는데 법무부 장관이 부동산 얘기하는 게 영 보기가 껄끄럽다”며 “얼마 전 (검찰) 인사 이런 것도 100% 청와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2016년 취임 후 김해시 봉하마을을 방문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눈물을 닦고 있다.[중앙포토]

 
그럼에도 이제 추 장관은 친문 지지층 사이에서 웬만한 친문 인사들을 능가하는 탄탄한 지지세를 획득했다. 한 측근은 “권리당원 게시판에 ‘추다르크’ 응원 메시지만 나오면 추 장관이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다”고 전했다. 이날 친문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엄마가 추미애라서 (아들 서씨가) 안 갈 군대를 간 거다”, “추 장관이 생각보다 더 유능하고, 믿을만하며, 적폐를 처단하기에 최적의 인물이란 걸 도리어 증명하고 있다”는 옹호글이 수십건 올라왔다. 과거 친노 진영과 대척점에 서있었던 추 장관의 변신은 성공적이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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