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자이델 재단과 함께하는 독일 통일 30돌
한편으로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전 세계는 하나가 되려고 하는 동서독을 주시하면서 통일된 독일이 1945년 이전과 같이 유럽에서 불안을 야기하고 공격성을 띄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또한 유럽에서 40년간이나 지속돼온 냉전 구조는 어떻게 될 것이며 50만 명 이상 동독에 주둔하고 있는 소련의 군대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와 같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프랑스·영국은 독일 통일 경계
미국만 나토·EC 틀 안서 지지
동·서독, 4대 전승국 4번 협상
콜, 고르바초프와 구체적 합의
독일, 나토 회원국 지위 등 관철
54만 소련군, 동독 지역서 철수
독일, 소련 해체 전 50억 마르크 차관 제공
마지막으로 쟁점이 됐던 내용은, ‘동독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의 철수와 관련해 조직은 어떻게 하고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이며, 향후 유럽 안보상황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서독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유럽공동체(EC)에 속한 가까운 동맹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은 독일 통일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통일이 되면 인구 8000만 명이 넘고 경제적으로 월등하게 앞서가게 될 독일의 출현으로 유럽에서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을지 우려했다.
통일 독일이 나토 회원국이 되는 것을 소련이 용인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가장 큰 의문이었다. 당시 소련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었다. 긴장 완화 정책을 실시해 서방 국가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국내에서는 반대로 위기를 맞고 있었다. 반대파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게다가 소련의 경제 상황도 붕괴의 길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1990년 5월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부 장관은 로타르 드 메지에르 동독 총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소련이 6월이나 7월께 지급 불능 상태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1990년 6월 내부적으로 사분오열 상태인 소련 공산당의 제28차 전당대회 이전에 골수 공산주의 신봉자들에 의한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겨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은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50억 마르크의 차관을 소련에 제공했다. 이는 물론 소련의 지불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1년 후인 1991년 8월에는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으며 이로써 소련은 해체됐다.
독일 통일을 향한 열망이 거세지던 1990년 3월이 되자 외교부 관계자들은 소위 2+4 형태로, 즉 동서독과 4대 전승국 관계자들이, 서로 논의를 하기 시작했다. 관련 협상에서의 돌파구는 정상들 간의 만남에서 이루어졌다. 1990년 5월 30일에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워싱턴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통일 독일이 나토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는 가능성에 관해 원칙적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2+4 협상은 독일 외교의 역사적 승리
2+4 협상은 외교 분야의 역작이었으며 독일 외교의 승리였다. 모든 예상과는 달리 단지 4번의 협상(5월 본, 6월 동베를린, 7월 파리, 9월 모스크바)을 통해서 40년간 유럽을 동서냉전으로 갈라놓았던 근본 문제들을 해결했다. 2+4 조약의 평화 규정을 통해 2차 대전의 상흔이 가장 극명하게 남아 있었던 베를린을 포함한 독일이 전쟁의 유산을 종식시키는 것이 가능했던 동시에 독일은 법적으로 4대 전승국의 관리를 받는 권한 유예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다. 이후 소련이 한 차례 독일의 외교 주권을 침해한 일이 발생했다. 옛 분단 시절 베를린장벽을 넘다 동독 주민들이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체포영장이 발부됐던 에리히 호네커와 아내 마고트 호네커 부부를 1991년 3월 매우 은밀하게 모스크바로 빼돌린 사례가 그것이다. 이후 호네커 부부는 다시 칠레로 망명해 그곳에서 사망했다.
독일 통일에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동유럽의 인접 국가들인 폴란드나 체코슬로바키아에도 통일은 큰 선물이 됐다. 독일은 후에 이들 국가가 유럽연합(EU)과 나토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국 역할을 했다. 30년이 지난 현재 미국이 독일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폴란드로 이동시키려고 하자 나토와 EU 안에서 새로운 갈등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상황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프랑스도 또한 독일 통일로 인해 유로화 탄생이라는 혜택을 얻었다. 물론 유럽은 지금 이로 인해 많은 현안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번역: 김영수 한스 자이델 재단 사무국장
독일 킬대학 경제학 석·박사, 파리1대학 경제학 석사, 1998~2002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학대학원 전임강사, 2004~200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2007년부터 독일 비텐-헤르데케대학 객원교수. 2002년부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