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에서 천둥·번개가 나온 국역 기사 1096개 중 일부다. 당시 사관은 ‘천둥과 번개가 쳤다’를 ‘뇌전(雷電)’이라고 간략하게 썼다. 이날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왕의 거동이 없었던 것으로 기록됐다.
북한산서 22일 1명, 2007년 4명 희생
오늘 남해안, 내륙 곳곳서 낙뢰 예보
"두려워하여 잘못 고치라는 것입니다"
신하들 충언에 조선 태조 "곧 고칠 것"
태종 16년(1416년) 11월 6일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쳤다. 임금이 천재를 두려워하여 정사를 보려고 하지 않으니, 유정현이 아뢰기를 “마땅히 정전에 좌기(坐起·정사를 돌보기 위해 행차함)하여 더욱 정사에 힘쓰소서” 하니, 고(告)할 데가 없는 맹인에 옷과 양식을 주어 편의하게 하여 편안히 살게 하라고 명하였다.’
태풍 ‘바비’가 수도권 서쪽을 훑고 지나가던 27일, 경남 통영·거제·의령과 경북 문경에 240여 회의 낙뢰가 발생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풍 밖에 고온다습한 구름이 발달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에 1만210회의 낙뢰가 내리쳤는데, 5일 하루에만 8592회였다. 지난해 하루 최다였다. 당시 태풍 ‘링링’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기 하루 전이었고,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충북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낙뢰가 몰아쳤다.
이미 지난 22일에 강한 ‘뇌전’이 있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수도권에는 낙뢰가 2500여회 발생했다. 이 와중에 북한산 만경대에서 낙뢰로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들은 당일 만경대에서 릿지(능선) 등반 중인 8명 중 일부였다. 사망한 1명은 100m를 추락했다. 중상을 입은 1명은 떨어지면서 중간 중간 걸린 나무의 완충 작용으로 60m를 떨어진 뒤 의식을 잃지 않았다.
번개는 ‘구름 속의 자객’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위력적이고 인명을 앗아가는 기상재해란 의미다. 번개가 적란운(소나기구름)에서 발생할 때 온도는 2만~4만 도, 2만~4만 암페어(A)의 전류가 흐른다. 20만A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2만~4만 도는 태양표면 온도(6000도)의 4~7배 수준이다. 이때 온도가 급격히 오르면서 천둥이 친다.
번개 중 구름 속, 구름 사이, 구름과 공기에서 일어나는 방전 현상을 ‘구름방전’ 이라 하고, 구름과 지표면 사이에 발생하는 방전을 ‘대지방전’(낙뢰 또는 벼락)이라고 한다.
낙뢰로 인한 사상자는 2009년부터 10년간 46명. 한국전기연구원은 낙뢰 안전 가이드북을 통해 “보통 낙뢰에 맞으면 80%는 즉사한다”며 “눈에 보이는 2m 정도의 두꺼운 섬광은 3만A인데, 가느다란 섬광은 수십~수백A로 맞아도 경상에 그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미한 부상자라도 몇 달씩 이상 감각과 근육통을 호소하고, 중상자는 영구적으로 수면장애, 성격 변화, 정신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
# 고려 선종도 천둥·번개 치자 액막이
500여 년 전 5월, 조선 태조는 ‘때아닌’ 천둥·번개를 겪는다. 연일 계속된 뇌전으로 신하들은 왕에게 직언할 기회를 얻었다. 이른바 ‘천둥·번개 찬스’였다. 태조 4년(1495년) 4월 25일(양력 5월 19일) 1번째 기사 내용을 이렇다. ‘대사헌 박경 등이 상소하였다. “하늘의 마음이 전하로 하여금 두려워하여 속히 수성개행(修省改行·몸과 마음을 닦고 잘못을 되돌아보며 행동을 고침)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임금은 “밤에 풍악을 잡히고, 거가(車駕·임금의 수레)가 경솔히 나가고, 가전(駕前·임금의 행차 앞)에 여악(女樂·여성 악인. 조선전기에는 창기·관기로도 부름)을 데리고 가는 것을 내가 장차 고칠 것이다…”고 답했다.’
신동원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천둥·번개는 하늘의 말씀이라 여겼던 것인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실록에서 많이 언급했다”며 “임진왜란 이후 영조·정조 시기를 거치면서 유교적 이념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왕들은 왜 천둥·번개를 두려워했을까. 이는 유교 통치이념인 천인감응(天人感應)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고동환 교수는 “중국 한나라의 동중서(董仲舒)에 의해 이론화된 천인감응 사상은 천변재이가 정치와 도덕이 문란하기 때문에 나오고, 군주가 바르면 상서로운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라며 “옛날 사람들이 천둥·번개·지진·햇무리 등을 꼼꼼하게 기록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토요일인 29일에 전국 곳곳에 비가 내리겠다고 했다. 남해안과 내륙에는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오겠다고 예보했다. 사관이 있다면 이렇게 적을지도 모른다. ‘뇌전.’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코로나 방전…금속에 푸른빛 돌 때 번개 친다
2018년 10월 31일 브라질 남부에 내리친 번개는 709㎞나 뻗었다. 동쪽으로는 대서양까지 닿았고, 서쪽으로는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었다. 지난해 4월 3일 아르헨티나 북부 로사리오에서는 번개가 16.73초 동안이나 이어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6월 이 두 번개를 가장 큰 번개와 가장 길게 내리친 번개로 각각 인정했다.
낙뢰는 돌발적으로 발생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특정 지역에 얼마나 낙뢰가 발생하기 예측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코로나 방전’은 낙뢰의 전조로, 일명 ‘성 엘모의 불’로 불린다. 구름의 전기장이 강해질 때 금속(주로 돌기형)에서 생기는 옅은 붉은빛 또는 푸른빛 방전 현상이다. 머리카락이 곤두서거나, 귓가에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리거나, 피부가 거미줄에 닿는 느낌이 들 때 등이 낙뢰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