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만에 30만 시청한 한국판 '블랙미러'
토종 OTT 웨이브·MBC 합작 'SF8'
한국 SF소설 토대 영화감독 8인 뭉쳐
지난달 웨이브 출시, 14일 MBC 첫방
현실적 소재, 생활밀착형 고민 담아
민규동 감독은 지난 10년간 성장해온 국내 SF 문학의 에너지가 밑바탕이 됐다고 했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스필버그의 ‘E.T.’, 제임스 캐머런의 ‘터미네이터’ 등 할리우드 SF가 당대 기술혁신과 더불어 평소 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조우하게 해줬다면 인문과학 세팅이 서구화된 상태에서 늦게 시작된 한국 SF 문학은 일상환경에 과학적 화두가 어떻게 스며들어있는지, 한국적 사유를 보여준다”면서 “원래 부제가 문윤성 작가의 1960년대 한국 최초 SF 소설에서 따온 ‘완전사회’였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마찰음이란 맥락에서, 영화적인 동시에 여덟 편이 다양하게, 적은 제작비로 구현이 가능한 원작들을 골랐다”고 설명했다.
식물인간 엄마, 간병에 지친 딸, 누굴 살릴까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창조한 인간을 죽이지 말라 하자 그럼 인간도 자신을 사랑으로 만든 거냐는 간호중. 저 질문에 누가 답할 수 있을까” “공중파에서 여성 간 키스를 볼 줄 몰랐다”…. 방영 후 SNS를 달군 반응들이다. 그럴 만큼 사비나 수녀(예수정)가 간병로봇 ‘간호중’과 나누는 대화 등 극 중 설정 하나하나가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소설 속 주인공 여성으로 바꿔 "더 새롭게"
김혜진 작가는 “소설 속 성별을 남성으로 잡은 건 내가 인물에게 너무 감정이입을 하게 될까 봐 일부러 거리 두려 애쓴 것도 있다”면서 “민 감독님이 여성으로 바꾼다기에 좋은 선택이라 말씀드렸다”고 했다. 또 “내겐 관심사가 아니었던 로봇의 감정에 대한 감독님의 연출이 흥미로웠다. 방송 후 트위터에 로봇에겐 사랑이 돌봄에 필요한 기능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는 해석을 봤는데, 원작자로서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반응이 반갑고 기뻤다”고 했다.
‘간호중’뿐 아니라 ‘우주인 조안’(감독 이윤정) 등 일부 원작 속 성별을 바꿔 8부작 전체가 대부분 여성이 주인공이다. 민 감독은 “여자 주인공이 맹활약하는 이미지를 꿈꾼”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미래를 구상하다보면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은 삶의 영역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거나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노골적인 새로움이 연상되길 바랐다”고 강조했다.
또 “‘간호중’은 원작에서 철학적 질문이 ‘안락사는 신의 영역의 특권인가’라면 SF적 질문은 ‘우리가 착취 대상으로 쓰는 기계가 인간의 마음까지 학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였다”면서 “이 로봇 입장에서 연정인은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본인이 딥러닝한 상대고 그를 위해 최선의 일을 했고 그 사람이 안겨 올 때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미세먼지 공포에 풀어낸 20대 방황
원작은 김효인 작가의 단편소설 데뷔작 『우주인, 조안』. 안전가옥 앤솔로지 시리즈 중 지난해 출간된 『미세먼지』에 수록돼 있다. 올해 스물여덟인 김 작가는 “미세먼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공포에 방향을 잃고 사는 듯한 제 또래들의 시대적 고민을 풀어냈다”고 했다. 연출을 맡은 이윤정 감독은 “재난 상황에서도 경제적인 계급 차이가 안전·생명 같은 근본적인 인권까지 결정하는 세상이란 게 현실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졌고 그럼에도 27살 주인공은 여전히 취업이나 또래 사이 자존심 싸움 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한다는 게 설득력 있었다”고 전했다.
국내 SF 젊은 독자층, 작가와 동반 성장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보니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 예의를 안 갖춘다”(김혜진 작가)거나 “평생 갖기 힘든 부동산이나 집의 의미”(김효인 작가)를 묻는 등 그 미래를 걱정할 만한 현실 사회의 고민들이 SF적 상상에 끊임없는 자양분이 된다고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SF는 어렵거나 매니어틱한 장르로 여겨졌는데 끊임없이 노력한 작가들 덕분에 좋은 시기를 맞았죠. 최근 10년간 세상이 많이 바뀌면서 SF를 일상의 이야기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게 됐어요.” 김효인 작가의 말이다.
판권 불티 나는 문학 잇는 SF 물결은…
코로나19로 오는 28일 온라인 개막하는 올해 미국 뉴욕아시아영화제엔‘SF8’ 전편이 상영작으로 초청됐다. 그 중 지구 멸망 직전의 초능력자들을 그린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감독 안국진) 이미지가 영화제 공식 포스터로 사용됐다. 다음달엔 우주선 SF 블록버스터 ‘승리호’가, 공유․박보검 주연 인간복제 소재 영화 ‘서복’도 개봉을 기다린다.
이윤정 감독은 “SF적 쾌감의 가능성이 대자본이 투여된 볼거리나 액션같은 기존 영화의 성공비법 안에서만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다”면서 “SF 문학의 성공과 ‘SF8'의 실험에 영화계가 자극받아 SF라는 세계 안의 다양한 가능성을 영화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