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아이] 팬데믹을 대하는 영국의 자세
존슨 총리 “전시 정부처럼 행동” 오판
금욕주의가 영국인 의식에 반영
‘평정심 유지하고 하던 일 계속’
전쟁 치르면서 공포·좌절 이겨내
애국심만으론 전염병 대응 못 해
동선 추적 등 한국 빠른 대처와 대비
영국은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 하면서’ 극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끔찍한 공포의 상황을 이겨 냈기 때문에, 이 방식을 어떤 나쁜 상황에든 적용할 수 있다고 너무 당연히 생각했다. 팬데믹의 상황에서조차도.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Keep Calm and Carry On’이란 문구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다. 런던 임페리얼전쟁박물관에 따르면 이 문구는 전쟁에 사용된 적도 없다고 한다. 그저 2000년 누군가가 이 문구를 다시 찾아내 마케팅 기회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30년대 영국 정부가 당시의 국가 정신을 반영해서 만든 정부 선전용 포스터에 쓰였던 것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영국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블리츠를 이겨 낸 것이 절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방식으로 동맹국과 함께 전쟁에서 싸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영국은 당시 상황을 자세히 관찰하고 즉각 대처하며 블리츠를 극복했다. 공습 사이렌 울리는 소리, 한밤중에 지하벙커로 뛰어들었던 사람들, 낯선 시골로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 불빛이 꺼져 있어 어두컴컴한 거리, 두꺼운 검정 커튼으로 닫힌 창문들 모두 런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영국 정부는 나라가 위기를 직면할 때마다 국민에게 블리츠정신을 강조했다. 지난 15년 동안 런던에서는 테러가 잇따랐고, 그때마다 영국 신문에서는 블리츠 정신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정치 지도자들은 런던 시민들이 일상 생활로 돌아가게 된 것에 대해 칭찬하기 바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영국 국민에게 “우리는 전시 정부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정신을 강조함으로써 정부는 영국인의 침착하고 반응하지 않는 고집스러운 본성이 바이러스에 의해 꺾일 수 없다고 말하며 애국심과 정부에 대한 지지를 구축하려 했다. 우리가 바이러스보다 더 강하며, 상황에 반응하지 않는 능력이 더 우세하기 때문에 결국 경제를 살리고 우리의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스토이시즘이 강하다 해도 바이러스보다 강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3월 17일 존슨 총리가 정부가 전시정부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영국에는 이미 2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다. 일주일 후 그 수치는 1만 명이 넘었고 7월 초에는 무려 30만 명을 넘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블리츠 때의 추정 사망자 수인 4만 명을 넘어섰다.
물론 이러한 민족적 스토이시즘의 근대적 토대가 그 바탕에 있든 아니든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항상 같은 방법으로 위기에 대응할 때 생긴다. 테러나 전쟁 상황에서 이런 영국의 문화는 확실한 강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팬데믹의 상황에서는 무용지물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방심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 결코 우리를 실패하게 한 적이 없다”고 믿음으로써 영국 정부는 팬데믹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
세계적인 의료위기를 감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은 문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나라는 영국만이 아니다. 미국은 지난 200년 동안 그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미국의 이런 문화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기술혁신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낼 때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하나의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한 전 세계 팬데믹의 상황에서, 이러한 문화가 적절하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분명하다.
문화적으로 볼 때 한국은 팬데믹의 상황에서 다른 모습을 연출했다. 지난 70년간의 역사를 통한 교훈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팬데믹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했다. 정치적 결정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한국의 대응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앞서 말한 영국이나 미국보다 더 나았다.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 수가 한국은 253명인데, 이는 영국 4180명, 미국 8571명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이다.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돼지콜레라 등을 겪으면서 한국 사람들은 정부의 빠른 대응을 이해하고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배웠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들은 정치적 소속은 잠시 제쳐 두고 정부의 조언에 따른다. 그리고 정부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위험한 상황이 끝난 후에 해도 된다고 믿는다.
한국은 평정심을 유지하지도,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지도 않는다. 약간의 혼란을 겪을 수는 있지만 그 후엔 상황에 바로 대응하는 것, 이게 바로 팬데믹의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한국 대처가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인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강력한 규제는 혁신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국의 문화는 빠른 발전에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팬데믹 상황에 대응하는 것만큼은 한국이 엄청난 강점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 대처, 인권 논란 있지만 효과적
물론 한국이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빠른 대응과 봉쇄 및 확진자 동선 추적 덕분이 크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서 정부를 믿고 따르는 한국의 문화도 분명 한몫했다. 현재 느끼는 약간의 고통이 장기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영국은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직도 영국에는 침착하고 냉정함을 유지하면 어떤 나쁜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가 남아 있고, 정부에서 이런 생각들을 장려하기도 한다. 더불어 이런 태도로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심지어 지금도 수천 명의 사람이 코로나19로 죽어 가고 있지만, 많은 사람은 삶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Keep calm and carry on’은 팬데믹을 이겨 내는 데 절대 도움이 될 수 없다. 현재의 상황이 다르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평점심보다 두려움이, 그리고 과감하고 빠른 대처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그게 바로 팬데믹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짐 불리(Jim Bulley)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한때 영국 지역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코리아중앙데일리 경제·스포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KBS월드, TBS(교통방송), 아리랑TV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진행자 및 패널로 출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