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지난 2월 히로시마에 본사가 있는 ‘주고쿠신문(中國新聞)’ 기자와 함께 합천에 갔다. 원폭 피해자 유족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통역으로 동행했다. 마침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였다. 대면 인터뷰가 어렵게 됐지만 합천원폭자료관에 있는 자료를 조사하고 관계자한테서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말모이’ 열도서 개봉돼 화제
당시 일본어 강요 사실도 잘 몰라
소주 ‘무학’ 교토 인근 지명과 비슷
마이즈루항의 비극 떠올라 착잡
합천 등지에 원폭 피해자 많아
주고쿠신문, 누락 조선인 발굴도
주고쿠신문은 지금까지 히로시마시가 파악하지 못했던 희생자를 찾겠다고 한국에서 취재한 것이다. 기자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다시 한국으로 와서 인터뷰하기로 했었지만, 그 후 한국에 오는 것조차 힘들어지면서 전화나 편지로 인터뷰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나는 통역과 번역으로 계속 취재를 도왔다.
그런데 이번에 인터뷰한 피해자 유족들은 모두 경상도에 거주하는 70~80대 어르신들이었다. 사투리 때문인지 전화로는 소통하기 힘들었는데 가끔 일본어가 들리기도 했다.
취재를 도우면서 75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조사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실감했다. 주고쿠신문이 지적한 대로 일본 정부가 해외 피폭자에 대해 2003년까지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기 때문에 피해자 조사가 늦어졌다. 그걸 이번에 끈질기게 취재해낸 주고쿠신문 기자에 감탄했고 이런 사실을 한국 사람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강제동원이나 원폭 피해자 외에도 일제강점기에 가족이나 친척이 일본에 있었다는 경상도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일까 경상도 사람들과 대화하면 일본어나 일본어가 어원인 듯한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에 경상남도 출신 지인들과 서울에서 식사했을 때 “요즘은 많이 안 쓰지만 옛날엔 일상적으로 일본어를 쓰곤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다마네기(양파), 우와기(윗옷), 스끼다시(기본안주) 등 이런 말을 썼었다고 알려주는데 그중 일본에서 안 쓰는 말들도 섞여 있었다. 예를 들어 건설 노동자를 뜻하는 노가다는 일본에서는 ‘도카타’라고 한다. 벽돌을 뜻하는 렝가, 비계를 뜻하는 아시바 등 건설 현장에서 쓰는 용어에 일본어가 많다고 한다.
일본어지만 한국에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신문사나 출판사 등에서 쓰는 ‘야마’라는 말. 일본에서는 산(山)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핵심주제라는 뜻으로 쓰인다. ‘기사에도 야마가 있어야 한다’, ‘이 기사 야마가 뭐야?’ 라는 식으로 쓴다. 일본 신문사에서 그런 식으로 ‘야마’라는 말을 쓰는 건 들어본 적 없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회와 소주를 즐겼다. 그때 마산 출신 지인이 “서울에서는 마시기 힘든 소주가 이 가게엔 있다”며 주문해 준 소주가 ‘무학’이라는 마산 소주였다. 병에는 ‘舞鶴’이라고 한자로 써 있었다. 일본 사람이라면 보자마자 교토 북부의 마이즈루(舞鶴)라는 지명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 병을 본 순간 일본 사케인 줄 알고 반가웠다. 마산 출신 지인에 의하면 마산에 있는 무학산(舞鶴山)에서 딴 이름일 것이라고 한다.
식민지배 역사조차 모르는 일본인도
‘교토 마이즈루하고는 상관없구나’하고 SNS에 무학 소주병 사진을 올렸더니 어떤 일본 사람이 “마이즈루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한국하고 인연이 깊다”고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1945년 8월에 일어난 우키시마마루 침몰 사건도 마이즈루항에서 일어난 비극이었다. 해방 후 일본에서 귀국하려는 조선 출신자들이 아오모리에서 부산으로 가는 배(우키시마마루)를 탔지만, 갑자기 배가 방향을 바꾸고 마이즈루항으로 입항하려다가 폭발이 일어나서 침몰한 사건이다. 사망자가 5000명이 넘는다는 자료도 있다. 계획적인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 의문의 사건이다.
궁금해서 무학산의 이름 유래를 찾아봤더니 산세가 학이 춤추는 듯 보여서라는 설도 있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역시 마이즈루와 상관 있을 수도 있다. 처음 舞鶴이라는 한자를 보고 반가워했던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한국 사람들한테 일본어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면 ‘일제의 잔재’라고 설명돼 있을 때가 많다. 사실 건물이든 말이든 ‘일제의 잔재’에 접하는 건 한국에 있어서다. 한국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일본과 관련된 부분에 관심이 가지만, 알고 보면 그 대부분이 식민지배와 연결된 것들이다.
일본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강요했었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식민지배의 역사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3·1 독립운동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1940년대 일본어를 강요받는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어 사전을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솔직히 일본에서는 개봉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역사도 있었다는 것을 전달하려고 일본 매체에 ‘말모이’를 소개하는 기사를 썼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지금 일본에서 ‘말모이’가 개봉했고 화제가 되고 있다.
‘말모이’ 일본 홈페이지를 보면 일본 배우 사노 시로(佐野史郎)의 코멘트가 있다. “몇 년 전 한국 배우와 함께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 한국어 속에 일본어와 같은 단어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한국이 일본의 통치하에 있었을 때 강제로 일본어를 외우게 했던 결과 남은 말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서 보는 일본 관객들도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 지내지 않으면 접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일제의 잔재’에 대해 바다를 건넌 영화가 대신 알려주고 있다.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