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위 조절 나선 북·미…트럼프는 한국전 참전비 찾아

중앙일보

입력 2020.06.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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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이나 여사가 지난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을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25 발발 70주년인 지난 25일(현지시간)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에 헌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한국전쟁 기념비를 찾은 건 처음이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우리가 왜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왜 아직 거기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고 비판한 뒤 전격적으로 일정을 잡았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워싱턴DC 내셔널몰에 위치한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찾아 헌화한 뒤 묵념을 했다. 한국전쟁 3년간 미군은 연인원 150만 명이 참전해 3만3686명이 희생됐다.

문 정부 ‘남북·동맹’ 두 토끼 고심
트럼프, 한국에 영상 메시지도
폼페이오 “방위공약 철통” 성명

북 도발 보류했지만 불씨 여전
문재인 정부 중재자 역할 고심
여권 일각 “대북제재 완화 추진”

트럼프 대통령은 현화식에 참석한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10여 명과도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데 감사하다”며 “건강을 잘 살피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행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별도 연설 없이 약 30분간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성남공항에서 열린 6·25 전쟁 70주년 행사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 “공산주의를 막아내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모든 사람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그는 “유엔 참전국을 비롯해 많은 도움을 준 분들께 우리가 합심해 이룬 성과는 실로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여러분의 승리를 축하한다”고 덧붙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성명을 내고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공동 가치의 이름으로 목숨을 바친 미국과 대한민국, 다른 나라 장병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의 한국 방위 공약은 여전히 철통같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번영을 보장하는 공동 목표를 향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지난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이후 남북관계 못지않게 한·미 동맹도 주목을 받고 있다. 북한 당국이 이달 초부터 위협의 강도를 지속적으로 높여 왔기 때문이다. 미 전략폭격기 B-52H가 동해에 전개되고 레이건함 등 3척의 핵항모가 한꺼번에 동아시아 해역에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대남 군사행동을 전격 보류하긴 했지만, 이와는 별도로 한·미 양국은 북한의 위협에 긴밀히 대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로선 고민이 작지 않다.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란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보류’ 결정 직후 “남측의 차후 태도와 행동 여하에 따라 (남북관계를) 점쳐볼 수 있는 시점”이라고 밝힌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미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한반도 문제를 독자적으로 인식하고 행동하라고 촉구해 왔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 경협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북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 문제와 관련해 꿈쩍도 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권 일각에선 독자 행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위원들을 만나 인도적 지원 등 대북제재의 일부 완화를 강력히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북핵 문제를 키운 것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라며 “(한국이) 한·미 워킹그룹의 족쇄를 풀고 나와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도 대남 비난을 멈춘 지 사흘 만인 26일 선전 매체인 ‘통일의 메아리’를 통해 “남한 당국은 한·미 워킹그룹에 목이 매어 남북 선언들을 한 가지도 이행하지 못했다”며 “미국의 제재 압박을 정당화해 주고 그에 추종하는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북 제재의 주축인 미국의 동의 없이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등 만만찮은 후폭풍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압박을 느끼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 북·미 양국은 수위 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북한은 매년 6월 25일 열던 반미 군중집회를 열지 않았다. 올해가 6·25전쟁 발발 70주년으로 ‘꺾어지는 해’인 데다가 북·미 협상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반미 집회와 비난 발언을 자제한 것은 나름의 전략적 행보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보다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25일(현지시간)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대북 정책에서 생산적 대화를 갖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 왔다”며 “공은 그들(북한) 쪽에 있다. 우리는 논의를 이어갈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도 ‘한·미 전략포럼 2020’에서 “미국은 싱가포르 회담에서 마련된 외교적 목표를 진전시키는 데 여전히 열려 있다”며 “남북관계에서 한국의 노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최익재·김다영 기자,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ij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