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콘 된 마이클 조던
매장에서 조던 운동화를 막 구매하고 나온 김윤태(20)씨는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출신인 마이클 조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근 조던에 뒤늦게 빠져 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콕 생활’이 늘면서 유튜브를 검색하다 우연히 본 동영상이 그를 단번에 조던 팬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스포츠 마니아처럼 조던을 농구선수로서는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정신력이나 이미지가 멋있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90년대 NBA 휩쓴 왕년의 스타
넷플릭스 다큐 공개 이후 인기몰이
뉴트로 유행 타고 인증·움짤 급증
전문 매장 ‘조던 서울’도 문 열어
“지디 오빠 신발을 외국인 선수도 신네”
이벤트에 3주 연속 참여했지만 매번 당첨되지 못하고 있다는 권혜지(18)씨는 “모든 조던 제품은 마이클 조던의 승인하에 출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은퇴한 선수라 경기장을 쫓아다닐 수 없으니 그의 이름을 딴 운동화를 대신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마이클 조던을 부르는 호칭도 남다르다. 커뮤니티와 유튜브 중심으로 ‘신발 파는 마사장님’ ‘마이클옹’으로 부르며 유명 경기 영상을 하이라이트로 편집하거나 명언을 움짤로 만든다. 지난 2월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의 추모식에서 눈물 흘리는 조던 모습을 두고 젊은 이용자들은 ‘밈의 황제’라 부르기도 했다. 밈(meme)은 인터넷에서 확산하는 생각이나 스타일을 뜻하는 용어지만 온라인에서 떠돌아다니는 재미있는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을 지칭한다.
2000년 전후로 태어난 요즘 세대에게 마이클 조던은 그야말로 ‘왕년의 스타’다. 조던의 플레이를 직접 보고 싶어도 자료화면을 통해 봐야 하는 세대다. 한 커뮤니티에는 ‘지디 오빠가 신던 신발 외국인도 신네요?’란 게시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수 지드래곤이 조던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 서자 흑인 선수(마이클 조던)도 지드래곤을 따라서 같은 운동화를 신었다고 남긴 글이었다. 댓글에는 조던 세대와 조던이 아닌 세대끼리 ‘조던 논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조던 관련 전문 매장이 생겨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지난달 말 서울 신사동에 ‘조던 서울’이 문을 열었다. 조던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제품 라인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나이키의 자회사로 분리돼 독립 브랜드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마이클 조던이 승인이 있어야만 매장 설립이 가능하다. 85년 출시된 에어 조던1부터 최신 제품까지 전시되어 있어 10, 20대 사이에선 이곳이 ‘조던 성지’로 통한다. 지난 22일 매장 방문을 위해 천안에서 올라온 김민수(20)씨는 “우리 세대에게 마이클 조던은 농구 선수란 이미지보단 패션 트렌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90년대는 10·20대 문화와 격차 작아”
젊은 세대 중심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뉴트로(New-tro) 유행도 조던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뉴트로는 새롭다는 의미의 뉴(New)와 복고의 레트로(Retro)가 합쳐진 말이다. 단순히 옛날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아날로그 감성을 새롭게 가공해 소비하는 행위다. 90년대 감성을 띈 음악, 패션, 소비 제품이 ‘신상품’으로 포장돼 1020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뉴트로 유행이 유독 90년대와 맞닿아 있는 이유는 10~20대가 즐기는 패션·소비 문화와 격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조던은 정확하게 90년대를 관통하는 스포츠 스타인 만큼 이른바 ‘복고 스타’로서 적합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열광하는 대형 스포츠 스타에 대한 갈증이 조던을 통해 반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도균 경희대 체육대학원 교수는 “많은 농구팬은 현역 NBA선수를 마이클 조던과 여전히 비교하고 있다”며 “이는 대중들이 조던보다 대단한 선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축구, 야구 분야에서 유명한 선수들이 있어 팬들의 사랑을 받지만 사실 일부 스포츠 마니아층 안에서 소비되는 경향이 크다”라며 “반면 마이클 조던은 인터넷과 SNS가 없었던 시대에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은 만큼 운동선수로서 가치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