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강아지든 꽃이든, 누구나 말을 건넬 '친구'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2020.06.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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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55)

10여 년 전쯤인가? 온갖 화제를 뿌리면서 시청률도 꽤 높았던 드라마가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화제를 부르기도 했던 드라마는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명대사(?)를 낳기도 했던 거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장면은 이것이다. 주인공 곁엔 가족과 다름없는 커다란 개가 등장한다. 하지만 개 역시 작가의 '데스노트'는 피하지 못했던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주인공들도 죽어 나가는 형편이고 보면 개의 죽음이야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개의 장례식이 장안의 화제였다.
 
사실 요즘이라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겠으나 십 년 전은 달랐다. 아니, 매우 달랐다. 검은 양복의 장례지도사가 엄숙하게 개의 장례를 치르던 장면이 참으로 낯설고 신기하기조차 했다. 약간의 문화적 저항까지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이야 반려동물과 연관된 사업은 물론이고 애견문화까지 깊숙이 자리 잡았으니 가히 격세지감이다.
 

반려동물, 도서, 식물, 악기... 내게 맞는 '반려'는? 

주인의 외출을 바라보는 강아지, 갤럭시탭 S6, 아트레이지. [그림 홍미옥]

 
얼마 전 아들이 보여준 사진은 많은 생각이 들게 했다. 사진 속엔 외출하는 주인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강아지가 있었다. 얼마나 따라가고 싶었는지 시무룩한 표정이 영락없이 사람의 그것과 닮아있다. 동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옆집 아기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엔 관심도 없던 나 같은 사람도 흔들어 놓고 마는 그런 표정이다.


시무룩, 아니 요즘 말로 개무룩(?)이다. 어릴 적 나를 떼어놓고 시장에 가는 엄마를 보며 안달을 했던 내 모습도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 한마디는? '사람이나 강아지나….'
 
언젠가 망자의 천도를 기원하는 칠월 백중기도에 간 적이 있었다. 향 내음이 퍼지는 사찰 경내에는 하얀 등이 빼곡히 걸려있고 등 아래에는 조상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뽀삐'다. 죽은 날짜와 함께 강아지 뽀삐의 천도를 비는 등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무려 15년 전이었으니 분위기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돈이 남아돈다느니 신성한 절에서 동물에게 이게 뭔 짓(?)이냐는 둥…. 알고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과도 영판 어긋나는 반응들이다. 지금이라면 누구도 이상케 여기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 '뽀삐'는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고 '반려' 그 자체였을 테니까!
 

최근 들어 반려동물을 기억하고픈 사람들의 수요가 많은 반려동물 납골당. [사진 김윤희]

 
애견과 함께했던 스토리를 블로그에 연재했던 지인이 있다. 마지막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순간과 그 후의 심정이 절절히 묘사되어 있었다. 가족으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존재로 함께 했을 반려견, 그 마지막을 소중하게 기억하는 남은 자들의 마음이 더없이 아름다웠다.
 

굳이 외롭지 않아도 필요한 '반려'

요즘 들어 부쩍 들려오는 '반려'라는 말,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다.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에 악기, 책까지 그 범위는 갈수록 넓어지는 것 같다. 나는 동물을 키우지도 않고 그렇다고 책이나 식물에 빠져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반려'라는 위의 것들은 나의 관심 밖이었다. 몇 년 전부터 꽃시장엘 드나들기 시작하고부터 안 그래도 이쁜 꽃이 더 이뻐 보이기 시작했다. 한여름이면 냉장고의 얼음은 제일 먼저 꽃병의 꽃 차지가 되곤 했다. 덕분에 우리 집의 여름은 언제나 얼음 부족 사태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위로와 생기를 주는 반려식물, 사진은 버터플라이와 조팝나무꽃. [사진 홍미옥]

 
지난주, 지인에게 선물 받은 꽃이 맥을 못 추고 늘어져 있다. 외출하기 전 충분히 물을 주고 얼음도 띄우고 말을 건넸다. 시원한 물 마시고 얼른 깨어나라! 꽃들에 말을 하는 나를 가족들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일방적인 대화는 계속된다.
 
그날 저녁,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꽃병을 확인했다. 언제 시들었냐는 듯 물을 머금고 활짝 피어난 노란 버터플라이! 꽃 이름마냥 날아갈 듯 기뻤다.
 
'아이고 애썼다 애썼어, 장하다 장해' 나도 모르게 또 말을 건네고 있었다. 중년에 접어들고부턴 부쩍 혼잣말이 많아진다. 꽃에도, 베란다 상추에도 혹은 손에 들고 잠들어버린 책 한 권에도.
 
이쯤이고 보면, 나도 반려라는 그 무엇과 함께 살고 있다 해도 될 듯싶다. 굳이 외롭지 않아도 친구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자, 오늘은 누구에게 말을 건넬까! 화장실의 책? 아니면 사진 속 강아지?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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