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72)
위스키는 온도나 디캔팅 여부를 와인보다 덜 따지는 술이지만, 디캔터로 더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술이다. 위스키를 디캔터에 담으면 아름다운 색을 즐기기 좋다. 대부분의 위스키에는 라벨이 붙어있어서 위스키 색을 온전히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된다. 투명한 디캔터에 위스키를 담으면, 아무 장애물 없이 색을 바라볼 수 있다. 투명한 잔에 따라도 위스키 색에 집중할 수 있지만, 병에 가득 담긴 위스키가 잔에 조금 담긴 위스키보다 눈에 더 들어온다.
대부분의 위스키는 오픈과 함께 마시기 편하지만, 와인 못지않게 ‘산화’가 필요한 위스키도 있다. 알코올 도수가 50도 이상인 위스키는 공기 접촉이 필요하다. 높은 알코올 도수의 위스키는 알코올 향이 너무 강해서, 이 향이 위스키의 좋은 향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 달까지, 위스키를 디캔터에 담아두면 너무 강한 알코올 향은 날려버릴 수 있다. 알코올 향이 날아간 자리엔 숨어 있던 위스키의 향이 찾아온다.
디캔터는 위스키에 대한 편견을 버려준다. 값싼 블렌디드 위스키라도 디캔터에 담아서 마시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값싼 위스키’라는 시선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좋은 건, 디캔터에 위스키를 담아둔 뒤에 어떤 위스키를 담았는지 잊어버리는 것이다. 3만 원짜리 위스키가 30만 원짜리 위스키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디캔터는 아주 많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소재도 다양하다. 유리, 도자기, 세라믹, 크리스털… 가격은 몇만 원 짜리부터 수 십만 원이 넘는 것도 있다. 특히 고급 크리스털 디캔터는 매우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일부 위스키 브랜드는 고급 디캔터를 갖길 원하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디캔터 한정 위스키를 출시하고 있다. 디캔터가 위스키보다 비싼, 배보다 배꼽이 더 비싼 경우도 있지만, 좋아하는 위스키 브랜드 디캔터는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위스키는 오감으로 즐기는 술이다. 위스키를 마실 때 디캔터를 쓰면, 그냥 위스키를 마실 때보다 더 많은 감각이 깨어날지 모른다. 디캔터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