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어젠다, 기본소득 논쟁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2일 ‘기본소득 기본 조례안’을 의결해 본회의로 넘겼다.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는 내용이다. 종합계획에는 기본소득 정책 기본 방향과 목표, 지급 대상, 재원 조달 방안 등을 담도록 했다. 이 조례안은 오는 24일 본회의에서 최종 심의된다.
이재명 “기본소득으로 경제 살려야”
김종인·이낙연 “도입 고민해볼 시기”
박원순 “전국민 고용보험 우선 도입”
홍준표 “사회주의 배급제 같아” 반발
월 50만원 주려면 연 300조 필요
종부세·상속세 10배 올려도 태부족
국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불을 댕겼다. 201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전국민에 연간 최대 130만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주춤하던 기본소득 논의는 코로나19로 다시 불거졌다. 지난달 초 정부가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소상공인 매출이 지난해 수준을 회복하는 등 소비 진작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정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선순환을 만들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경제 대책”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양극화가 심해지고 좋은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을 타개하려면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 3일 “이제는 기본소득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불씨를 키웠다.
◆기존 복지 대체냐, 추가냐=기본소득에 대한 논란은 다양하다. 보수와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도입 주장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느냐”며 “전국민 고용보험을 우선 도입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예를 들어 24조원의 예산이 있다면 성인 인구 4000만명에게 월 5만원씩 나눠주는 것보다 실직자 200만명에게 100만원씩 나눠주는 것이 낫다는 얘기다. 박 시장은 “근로장려금이나 일자리안정기금 등을 활용하면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 1400만명에게 고용보험 혜택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기본소득 보장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률적으로 다 지급하는 것은 무리”라며 “필요한 계층에게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기본소득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기본소득제의 본질은 사회주의 배급제도를 다시 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의외로 진보 진영에서도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하느냐의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노동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 기본소득 자체가 작은 정부를 원하는 자유주의자들이 복지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놓은 제안이라는 점 등을 문제로 꼽는다.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본소득제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우리 복지 체제를 대체하자는 것인지, 보완하자는 것인지, 재원 확보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제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는 기본소득에 대한 정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서구권을 중심으로 논의된 기본소득은 복잡다단한 복지체계를 없애는 대신 시민들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개념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지원금을 줄 사람을 정하지 말고 그냥 나눠주면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고용이 줄어들면서 수요 감소로 경기침체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는다. 2016년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에 부쳤던 것이 이런 의미의 기본소득이다. 모든 복지제도를 없애는 대신 1인당 300만원을 매달 지급하는 내용이다. 결과는 77%의 반대로 부결됐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기본소득 논란은 스위스처럼 기존 복지제도를 바꾸자는 것인지, 자녀수당이나 기초노령연금처럼 운영하겠다는 것인지조차 불명확하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문제다. 더미래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주려면 매년 186조원, 50만원을 주려면 309조원이 필요하다. 더미래연구소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심의 모임인 ‘더좋은미래’의 싱크탱크다. 50만원씩 주려면 지난해 정부의 총지출(469조원)의 60% 이상이 필요하다. 30만원씩 준다해도 지난해 복지예산 전체(161조원)보다 더 많이 든다. 기존 복지제도를 유지하면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그만큼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해 메우는 수밖에 없다. 국채를 발행하기도 쉽지 않다. 기획재정부는 2022년 국가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서며 GDP의 50%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결국 세금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2019년 기준 소득세와 법인세는 각각 80조원, 부가가치세는 70조원 규모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50%씩, 부가가치세를 두배로 올려야 150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 종합부동산세(3조원), 상속세(7조원) 같은 ‘부자 세금’ 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증세가 없다면 근로장려세제·양육수당 등 기존의 현금 복지에다 소득공제 혜택까지 다 없애도 월 11만원 정도밖에 줄 수 없다”며 “이건 심하게 말해 용돈형 기본소득”이라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2017년 기준 26.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3%보다 7.5%포인트 낮다. 국민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세금과 사회보장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세금을 OECD 수준으로 올리면 연 150조원 정도를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이재명 지사는 “장기적으로 당연히 증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정책위원장은 “기본소득은 증세만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작고 기존 복지제도와 통폐합돼 실질적인 혜택을 오히려 하향 평준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기본소득제=고용 여부, 소득, 재산 등을 따지지 않고 모든 시민에게 일정액을 정기적으로 주는 것 .
● 안심소득제=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에 대해 소득 부족분의 일정 비율을 지원하는 제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최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우파 버전’ 기본소득으로 소개했다.
● 음의 소득세=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소득세 제도. 일정 소득을 기준으로 넘는 부분에는 과세, 모자라는 부분에는 보조금을 준다. 기준소득 2000만원, 세율이 20%라면 100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 200만원을 보조해준다.
● 안심소득제=일정 소득 이하의 가구에 대해 소득 부족분의 일정 비율을 지원하는 제도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최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우파 버전’ 기본소득으로 소개했다.
● 음의 소득세=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소득세 제도. 일정 소득을 기준으로 넘는 부분에는 과세, 모자라는 부분에는 보조금을 준다. 기준소득 2000만원, 세율이 20%라면 100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 200만원을 보조해준다.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