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전사의 일기]"기부는 해봤어도 구호물품 받게 될줄은…원동력 삼아 달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0.06.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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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미 간호사의 일기 2
지난 2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대구·경북 지역을 강타했을 때부터 지금껏 다섯 달째 경북대병원 내과중환자실을 지키는 간호사가 있다. 올해로 17년 차 베테랑급 구성미 간호사(39·여)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투의 현장에서 구 간호사가 써내려가는 일기를 연재한다.
2월의 화창한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바로 옆 건물의 실금 하나를 발견했다. 수많은 균열로 무너지기 직전의 고층 건물을 본 것처럼 그렇게 코로나19는 내 앞에 나타났다.
 
휘청거리는 건물이 곧 무너져 내릴까 두려웠고,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다. 건물에서 멀리 떨어지면 안전하지만 건물 안과 주위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놔두고 그냥 갈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그냥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피하라 말하고는 조금이라도 건물이 무너지는 시간을 미뤄보기 위해 건물에 내 손과 몸을 대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두 눈을 찔끔 감고, 있는 힘껏 두손으로 밀면서 눈을 뜨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건물이 휘청거리지 않고 버티고 서 있었다. 눈을 돌려 주위를 보니 걸어가던 많은 사람이 모두 함께 건물을 두손으로 밀고 등으로 받치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예상보다 몇배는 더 크게 휘몰아쳤을 때, 그 상황들을 지금처럼 견뎌낼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중환자실에 있던 일반 환자들을 다른 중환자실로 옮기고 코로나 확진 환자들이 입원하는 상황 속에 나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다. 경험해 보지 않았던 방호복을 입고 간호 해야했고 격리와 관련된 까다로운 지침들이 쏟아졌다. 

구성미 간호사. 사진 간호사 제공

매일매일 새로운 지침이 나왔다. 혹시 모를 상황들은 감염 관련 부서와 소통해 바로바로 해결했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과연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 해내어 지고 있었다. 집으로 가면 늘 눈 녹듯 바닥에 쓰러졌다. 피곤해서 아무것도 못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하던 사람들은 그러나 근무만 시작하면 어디에서 그렇게 힘이 나는지 모든 일을 해내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힘을 얻고 돌보는 환자를 위해 힘을 짜내어 어려울 것만 같았던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더 많은 동료가 도움을 주기 위해 달려와줬다. 이해타산을 따져서가 아니라 의료진으로서의 사명감으로 달려와줬다. 달려오지 못하는 분들은 구호 물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격려와 관심을 보냈다. 학생 때 군인 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써보기도 했고 TV를 보다 기부도 해봤지만 내가 구호 물품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내 발 바로 앞밖에 못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 멀리를 내다보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러다 눈을 돌려 보니 병원 밖 세상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대구시 전체에 사람이 없어진 것처럼, 평상시 그렇게 사람이 붐비던 시내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적소리와 매연으로 가득했던 도로는 차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나는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강한 정신력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었다. 아직 코로나 19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사람들이 보여준 마음을 원동력으로 끝나는 그 날까지 지치지 않고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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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