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1975년 내놓은 책 『감시와 처벌』에서 파놉티콘의 개념을 사회 전체로 확장했다. 권력이 다수를 감시하는 사회에서, 개개인은 언제 감시받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늘 감시당한다는 가정하에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모든 동료는 감시자다”라는 ‘자발적 감시 사회’다.
정부, QR 출입부 등 통제로만 해결
개인의 자유 너무 가볍게 보지 않나
선한 의도를 앞세우는 정책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그까짓 개인정보 약간’이 중요하다며 QR코드를 비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테러나 범죄, 전염병 같은 큰 문제를 눈앞에 두고 인권이나 개인정보를 이야기해 봐야 큰 호응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내 정보를 마음대로 들여다보는 것에 기꺼운 마음으로 찬성할 수도 없다. 말로는 인권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는 전화, e메일 등을 무차별 들여다볼 수 있는 ‘애국자법’을 제정했다. 김대중 정부도 국가정보원에 테러 수사권을 부여하는 ‘테러방지법안’을 내놓았지만 인권침해 논란 탓에 무산됐다. 이후 2015년 파리 테러를 계기로 박근혜 정부에서 재추진해 이듬해 제정됐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일주일이 넘는 필리버스터 끝에 표결에서 모두 퇴장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데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테러방지법 전면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당선됐지만 지금까지 개정 움직임은 없다.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도 마찬가지다. 2014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고 한마디 하자 정부는 급급히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방지 대책회의’를 열었다. 카카오톡 간부가 여기에 참여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텔레그램으로 대거 ‘사이버 망명’을 했다. 당시 야당은 “SNS가 사회감시망으로 변질되니 사이버 망명이 줄을 잇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이 터지자 즉각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했다. 네이버·카카오가 글과 사진, 동영상을 확인해 불법촬영물을 삭제하라는 내용이다. 어, 그건 사전검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성착취물, 아동음란물을 근절해야 한다는 대의에 휩쓸려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안전을 사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은 둘 다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건강을, 안보를, 공익을 위해 추진하는 사안이라 해도 시민의 자유를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공정과 정의를 앞세우는 정부라면 더욱 그렇다.
김창우 사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