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넌 누구냐
정현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도시락은 점심밥을 넣어서 다니는 식생활 용구 또는 점심밥을 통칭한다”며 “옛 문헌에서 행찬(行饌)·행주(行廚) 또는 행주반(行廚飯)으로 일컫듯 ‘휴대밥’의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도시락이란 명칭은 1920년에 나온 조선어사전에 처음 등장한다. 1728년 김천택이 엮은 ‘청구영언’에는 ‘점심 도슭 부시고’ 란 표현이 나온다. 이는 도시락의 어원이 ‘도슭’이라는 설을 뒷받침한다. 조선의 경종은 관원들에게 도시락을 지참하게 했다(승정원일기, 1721년). 경주 천마총과 광주광역시 신창동 유적지에서 찬합이 나온 것으로 보아 도시락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 가는’ 도시락 만드는 50대 사장
소백산 근처 식재료 써 50㎞ 배달
‘싸 가는’ 도시락 만드는 30대 회사원
샌드위치 등 피하고 국물·냄새 NO
1990년의 취사·야영 금지 조치가 친환경에서 시작했듯, 2020년의 도시락도 친환경이 메인 메뉴다. 대충 먹자가 아닌, 제대로 된 한 끼다. 단, 선택의 고민은 ‘사 가느냐’와 ‘싸 가느냐’에 있다.
#사 가느냐
박경희(50·단양로컬푸드협동조합 대표)씨는 소백산 국립공원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2018년 8월 국립공원 중에서 처음으로 도시락 배달 서비스 ‘내 도시락을 부탁해’를 선보였다. 이 서비스는 2019년 3월에 전국 21개 국립공원으로 확대됐다.
- 오늘 메뉴는 뭔가.
- 잡곡밥에 한우 버섯불고기와 더덕 무침·계란말이가 주메뉴다. 무김치와 황태국도 곁들였다. 협동조합을 통해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쓴다. 직접 농사지은 반찬도 쓴다.
불고기에는 단양 명물인 마늘이 들어갔다. 단양 마늘은 큰 일교차 속에 석회암 지대에서 재배돼 조직이 단단하고 맛과 향이 뛰어나다. 이르면 이달 중순부터 수확에 들어간다. 한입 먹어봤다. 마늘은 고기 조직 속으로 거침없이 침투하며 누린내를 단단히 잡아주면서도 육질의 부드러움을 끌어냈다. 황태국은 시원함과 개운함이 합창했다.
- 메뉴는 어떻게 선정하나.
- 처음에는 등산객들이 세 가지 메뉴 중 하나를 고르게 했다. 그러다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 가지로 바꿨다. 소백산 철쭉 축제 때는 많게는 하루에 도시락 50개가 나가기도 한다.
- 보온 도시락 용기를 쓴다.
- 도시락은 집밥을 들고 나가는 것이다. 따뜻해야 한다. 게다가 소백산은 겨울 산행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 8000원이면, 내용물과 노고에 비해 싼 편 아닌가.
- 새벽 5시에는 일어나 3시간은 준비한다. 9시까지 픽업 장소에 갖다 놓는다. 반납 도시락을 다시 가져오면, 하루에 50㎞는 달려야 한다. 처음 소백산 국립공원에서 제안이 왔을 때 이익을 생각했다면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지역을 알리고 건강을 선물하는 게 즐겁다.
천동계곡에서 더덕무침을 씹었다. 바삭 소리가 경쾌하게 났다. 짧은 쓴맛 뒤의 긴 단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더덕의 사포닌 성분이 몸속에 달라붙는 기분. 다리에 힘이 갔다.
#싸 가느냐
양선아(31·회사원)씨는 요즘 잘나간다는 2030 레깅스 등산족이다. 인스타그램 '_sna_table' 계정에 자신이 만든 등산 도시락을 올리고 있다. 3년 전부터 산에 가기 시작했다. 도시락 싸는 솜씨는 산에서 빛을 발했다. 지난달 31일 그를 북한산에서 만났다. 예상대로 레깅스를 입고 나왔다. 1m 74㎝의 큰 키에서 나오는 길고 빠른 걸음을 기자가 따라가기 벅찼다.
- 삼색김치볶음밥에 토핑유부초밥·닭가슴살무쌈말이·삼색과일이다. 재료는 퇴근길에 마트에서 산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도 충분히 활용한다.
- 메뉴는 어떻게 선정하나.
- 낱개로 집어 한입에 먹기 좋은 걸 생각한다. 주먹밥·유부초밥을 자주 싸고 나눠 먹기 불편한 샌드위치나 토스트는 피하는 이유다. 산에 갈 때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움직임이 많다 보니 국물 없고, 잔반 없고,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재료비는 1만 5000원 선에서 제한한다. 이 돈으로 3~4명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성비를 추구한다.
- 양은 도시락을 쓴다.
- 일회용품을 절대 안 쓰려니 3년째 쓰고 있다.
-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은.
- 오늘은 3시간 걸렸다. 평소에는 2시간이다. 만드는 시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도시락을 함께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도시락 사진 보여주면서 ‘산에 가자’라면 여지없이 넘어온다.(웃음)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