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불안 씻는 자비심…‘언택트 명상’으로 만나다

중앙일보

입력 2020.05.2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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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명상의학회와 함께하는 코로나 명상

대한명상의학회 회원들이 온라인 명상 시범을 보이고 있다. 첫째 줄 왼쪽부터 전현수 정신과 전문의, 이병철(한림의대)·정영은(제주의대) 교수, 둘째 줄 왼쪽부터 박용한 정신과 전문의, 김완두 KAIST 명상과학연구소 소장, 이성근 정신과 전문의, 셋째 줄 왼쪽부터 이화영(순천향의대) 교수, 오중근·한창환 정신과 전문의, 넷째 줄 왼쪽부터 김주환(연세대)·이강욱(강원의대) 교수. [사진 대한명상의학회]

자가격리 9일차, 지자체 보건소에서 보낸 반려식물과 콩나물 재배 키트가 도착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지친 내 마음 어루만지기 심리 방역 지원”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섬세한 배려와 따뜻한 정성에 그동안에 미국과 한국에서 쌓였던 코로나 피로감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필자는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개발한 ‘자비 명상’ 프로그램의 국제화를 연구하기 위해 코로나19 감염병 사태가 막 터지기 시작한 지난 2월 하순경에 미국에 갔다. 미국에 도착하면 바로 8주간 하바드의대 수련병원 명상과학연구소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의 확산을 우려해 연구소 측에서 10일간 자가격리를 하도록 권유했다. 격리를 마치고 대면으로 첫째 주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 참가자 중 한 분이 계속 기침과 재치기를 반복했다. 모두 불안해하는 나머지 둘째 주부터는 이상이 없는 사람만 모이기로 하였다. 조금이라도 몸에 이상이 있거나 불안감이 있는 사람들은 온라인 참여를 독려했다. 온/오프 라인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무난히 진행되었다.

하버드의대 명상과학연구소 방문
팬데믹 우려 MBSR·MSC도 ‘랜선’

자비 명상 땐 연대·공감 능력 커져
긍정성 강화 ‘심리 방역’ 해볼 만

한국서 독자 개발한 ‘자비 명상’
 
그 다음 주 보스턴에서도 슈퍼 감염자가 나오면서 하바드대, MIT 공대 등 보스턴 주변의 대학들을 모두 봉쇄하고 재택근무를 하도록 하였다. 셋째 주부터는 불가피하게 온라인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온라인 명상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였다. 요가, 헬스, MBSR(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마음챙김에 기반한 스트레스 감소), MSC(Mindful Self-Compassion·마음챙김-자기연민) 등과 같은 명상과학 프로그램들도 역시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는 쉽게 진정될 것 같지 않다. 장기화되는 재택근무와 자가 격리에 따른 답답함과 우울감, 불안감과 수면장애, 짜증과 분노 조절장애를 호소하는 환자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물리적 방역만큼 심리적 방역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심리 방역에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역시 명상이다. 대한명상의학회는 의학계의 명상 전문가들이 모여 ‘의료명상 전문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고, 실제 임상 현장에서 적용하는 학술단체이다.  
 
지난 40여 년간 과학적 연구에 의해서 명상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를 비롯한 세계의 명상과학연구소들은 효과성은 물론 이제는 명상의 의료적 효과 이면에 내재되어 있는 기저를 규명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기저의 규명을 통해 명상의 원리가 밝혀진다면 다양한 맞춤형 명상과학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팬데믹 감염병 시대에 적합한 맞춤형 명상과학은 무엇일까? 공감 본능(empathy instinct)을 발현시킬 수 있는 마음챙김 기반 자비 명상법이 적합할 것이다. 공감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본능이며 사람과 사람을 긴밀하게 연결하는 따뜻한 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장기화되는 감염병 질환은 물리적 방역 이후에 나타나는 공포와 분노의 마음 전염이 부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다. 매튜 리버먼 교수는 『사회적 뇌, 인류 성공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사회적 고통을 자신의 신체적 고통인 것처럼 처리하는 공감 신경회로가 태생적으로 구축되어 있다고 말한다.  
  
코끼리·마인드풀 등 명상앱 활용을
 

김완두(가운데) 소장과 하트스마일명상연구회원들의 오프라인 명상. [사진 김완두]

긍정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이 신경회로를 발화할 수 있다면 팬데믹 감염병 시대에 유용한 맞춤형 명상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명상과학 연구의 결과를 보면 마음챙김 기반 자비명상 프로그램이 불안과 공포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보살피는 동시에 사회적 연대와 긍정적 공감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자비명상 프로그램을 8주간 진행하면서 필자가 경험한 점은 코로나 시대 온라인 명상이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제공한 피드백이 이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불가피하게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지만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매 회기마다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피드백을 모아 반영하였다.  
 
물론 예상하지 못한 크고 작은 도전들을 마주했다. 디지털 환경의 기술적인 불안정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온라인으로 만난 분들에게 자신의 명상 경험을 나누는 것에 대한 어색함과 불편함을 토로하는 분도 있었다. 어떤 분의 경우는 화면상에서 보이는 다른 참가자의 스마트폰 사용이 자신의 주의를 방해했고 자신도 스마트폰을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여 좀 더 안정된 온라인 수행 환경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한 참가자는 코로나19 봉쇄조치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댓글 공방을 통해 강한 분노가 일어났는데 자비명상을 한 후에 상대방에 대한 깊은 연민의 마음을 경험했다고 한다. 또 다른 참가자는 자신이 늘 생활하는 친숙한 공간에서도 명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평소에 자신이 즐겨 마시던 잔에 차를 준비해와 화상에서 ‘차 명상’을 했던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응답도 다수 있었다.
 
온라인 명상이 더욱 더 효과적으로 운영되려면 참가자들 개개인에 대한 섬세한 배려와 관심이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중 2~3명씩 대화 할 수 있는 단톡방을 잘 활용해야 하며 주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바디스캔과 같은 이완 프로그램을 적절히 안배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팬데믹 선언 이후 미국과 유럽의 명상과학 연구자들과 실천가들은 코로나19 명상 온라인 프로그램(http://www.freemindfulness.org/covid19)들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헤드스페이스, 캄 등 해외 명상앱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카카오같이가치 마음챙김, 코끼리, 마인드풀 등 명상앱에서 마음 방역 코로나19 명상을 경험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온라인 가상현실 전성시대를 예고한다. 명상과학도 이 흐름을 거슬러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석연치 않은 느낌은 왜 일어날까? 인류의 뇌·문화 발달은 ‘느낌’에서 시작되었고 ‘느낌’은 몸과 몸의 접촉을 통해서 시작된다는 뇌신경 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말이 귓가에 남는다.
 
‘지금 여기’로 마음 모으기…직접 해봐야 진정한 묘미
명상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다. 가슴과 마음으로 한다. 명상을 많이 한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있다. 명상의 기법과 효과에 대해 많이 들었다고 해서 명상이 그냥 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으로 명상을 한다고 해서 크게 바뀔 것은 없다. 대한명상의학회 박용한(정신과 전문의) 부회장은 “명상은 결국 자신이 직접 해보며 느끼는 경험을 통해 저절로 지혜로운 삶의 길을 찾아가게 해준다”고 말했다. 직접 해봐야 명상의 진정한 묘미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따로 시간을 낼 것도 없다. 바로 지금 시도해볼 수 있다. 명상은 자신의 마음을 ‘지금 여기’로 모으는 것이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와 분노,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분산되어 있는 마음을 현재로 모으는 일이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마음을 현재로 챙겨보는 것이 명상 훈련이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간에 그 일을 가만히 내려놓고 자신의 호흡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저 편한 자세로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코로 들어오는 숨과 나오는 숨 사이를 관찰하기만 해도 된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이렇게 단 3분 만이라도 숨을 가다듬어 보자. 그 짧은 시간에도 계속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몸에 밴 습관이다. 하던 일을 잠시 멈추는 데서부터 마음챙김은 시작된다. 잠시 멈추고 자신의 호흡을 돌아보는 명상 연습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balance@joongang.co.kr
 
김완두 KAIST 명상과학연구소 소장
김완두(미산) 대한명상의학회 고문, 옥스퍼드대 철학박사, 하트스마일명상 개발자, 자비명상의 국제화 연구 진행 중, ‘자비’ ‘행복’ ‘마음’ 관련 다수 논문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