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Big Questions 〈14〉 권력
말 한마디면 아내·신하 등 참수
두려워도 큰 보상 기대 덕 유지
누구나 완벽한 미래 예측 못 해
어른·전문가 경험에 ‘아웃소싱’
정보 가진 쪽이 타인 행동 좌우
헨리 8세의 개인 비서였던 브라이언 튜크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두려움과 불안함.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두렵지 않았을까? 반역죄로 런던탑에서 오늘 참수형을 기다리는 죄인들은 어제까지 헨리와 함께 사냥 나갔던 친구들이었고, 오늘 헨리의 친구와 가족들 역시 언제든지 참수당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숙청과 우정과 참수와 사랑의 반복. 잉글랜드는 헨리 튜더라는 한 남자를 위한, 그리고 그 한 남자만을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되던 절대왕정 국가였다. 이제 슬슬 궁금해진다. 어떻게 한 사람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 말 한마디면 언제든지 아내와 친척과 백성의 목을 자를 수 있었던 헨리. 큰 덩치로 유명했지만, 성인 남자 몇이면 충분히 제압 가능했을 헨리는 남들보다 수백 배 힘이 강하지도, 특별히 더 영리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프렌치와 레이븐의 6가지 이유 모두 결국 ‘정보’라는 공통점의 다른 이름이지 아닐까? 인간의 행동을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들은 무엇일까? 물론 우선은 ‘의식주’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 의식주만큼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내일 사냥은 성공적일까? 한발 앞으로 더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손에 잡은 돌을 던지면 어디로 날아갈까? 어쩌면 인생은 미래에 대한 예측의 꼬리 물기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의 가장 핵심적 기능은 ‘미래 예측’이라고 주장하는 뇌과학자들이 적지 않다. 진화적으로 오래된 중뇌와 간뇌 등은 현재와 과거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가장 최근 만들어진 대뇌는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고, 미래의 나를 위해 가장 최적화된 결정을 오늘의 나를 통해 실행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완벽한 미래 예측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래 예측이란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미래는 과거의 반복이라고 가설한다면 우선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과 인생은 변곡점과 특이점이라는 예측불가능한 함정으로 가득하다. 과거는 미래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지만, 미래는 반복성과 랜덤의 조합이다.
미래예측을 시도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아웃소싱’이다. 과거 데이터만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불가능하다면, 내가 앞으로 살아남아야 할 미래가 이미 과거인 타인에게 내 판단을 위탁해볼 수 있겠다. 모든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맹수로 가득한 정글을 처음 경험하는 나에겐 모든 것이 예측불가능한 미래 위험 요소들이지만, 이미 정글을 여러 번 경험한 이들에겐 기억 가능한 과거 사건들이다. 나의 미래를 스스로 예측하긴 어렵지만, 내가 경험할 미래를 이미 경험한 이들의 과거를 통해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볼 수는 있겠다.
IT 기업의 권력은 ‘감시 자본주의’
만약 권력의 핵심이 정보라면, 정보의 미래는 동시에 권력의 미래이겠다. 나에 대한 정보는 동시에 내 미래 행동의 예측 가능성을 의미한다. 아마존과 넷플릭스가 나보다 더 정확히 내가 선호하는 영화와 책을 추천해준다. 하버드 경영대학교 쇼샤나 주보프 교수는 그렇기에 소비자의 데이터를 모으고 예측하는 다국적 IT 기업들이 최근 새로운 형태의 권력인 ‘감시 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를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약한 호모 사피엔스. 나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의 미래가 이미 그들의 과거일 것이라는 믿음 아래 부모와 전문가와 정부에 미래에 대한 선택권을 아웃소싱했다. 이제 정부, 교사, 부모보다 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가진 기업에 우리는 또 미래 선택권과 판단을 아웃소싱하고 있기에, 실리콘 밸리 기업은 21세기의 새로운 헨리 8세가 돼 가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