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첫 1TB 메모리 컴퓨터…플래터너 “게임 체인저” 흥분

중앙일보

입력 2020.04.25 00:20

수정 2020.04.25 00:53

SNS로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패러다임의 전환 〈1〉 SAP 한국연구소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영원한 것은 없다. 기술이든 산업이든 정치든. 토마스 쿤은 “과학은 불연속적 전환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발전하며 주류 세력이 아닌 변방의 용감한 아웃라이어가 이러한 전환을 이끈다”고 했다. 하버드 경영대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대기업은 기존 사업과 충돌하는 파괴적인 혁신을 하기 힘든 ‘혁신가의 딜레마’가 있다”고 했다. 이 딜레마 때문에 대기업도 신생 벤처에 의해 밀려난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국내외 정치도 파괴적 혁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패러다임 전환은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비용 구조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현 패러다임의 주류세력은 관료화된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 이런 장애물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해 과감하게 변화의 실험을 이끄는 것이 혁신 기업, 혁신 대학, 혁신 국가 지도자의 역할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는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넘어 패러다임 전환을 가속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SAP 한·미·독 원격 콘퍼런스
동급 용량 16~32GB이던 시절
“실시간 비지니스 패러다임”

SAP서 HANA 개발, 사업화 박차
기업 DB 분산→기계학습 신기술
며칠씩 걸리던 분기 결산도 뚝딱
삼성전자 등서 메모리 공급 지원

실험실 인재 모으고 검색엔진 회사 인수
 
2009년 11월 말 새벽 2시, 서울과 독일, 실리콘밸리를 연결하는 SAP의 3대륙 원격 콘퍼런스가 시작됐다. 나는 SAP 한국연구소에 세계 최초로 7인치 높이의 4U랙 컴퓨터에 1테라바이트(TB) 대용량 메모리가 설치됐음을 알렸다.


“인텔의 신형 ‘네할렘’ 컴퓨터 보드에는 64개의 DRAM 메모리 슬롯이 있습니다. 한국의 삼성전자가 1년 뒤 출시할 16GB 모듈 샘플 64개를 우리에게 지원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1024GB, 즉 1TB 메모리 컴퓨터가 우리 손에 있습니다.”
 
“세계 누구도 이 순간 이 정도 크기의 컴퓨터에 1TB 메모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가치가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실시간 비지니스를 가능하게 하는 인메모리 DB 패러다임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당시 동급의 컴퓨터 메모리 용량이 평균 16GB에서 32GB이던 때였다. SAP는 이런 컴퓨터에 올린 SAP 미들웨어(R3)와 ERP 소프트웨어로 전 세계 시장 1위를 달리고 있었다. SAP는 ERP 데이터베이스로 오라클, IBM,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을 지원했다. 오랜 파트너인 오라클을 사용하는 고객이 가장 많았다.
 
“이건 게임 체인저입니다! 드디어 우리의 시간이 왔습니다!”
 
독일 포츠담에서 하소 플래터너 SAP 회장이 흥분을 누르지 못하고 반복해서 말했다. 게임 체인저는 시장의 흐름을 통째로 바꿀 제품을 가리키는 데 쓰는 비즈니스 용어다.
 
“인메모리 기술로 기업의 실시간 회계분석과 공급망 관리를 할 수 있게 되면 경영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습니다.”
 
“데이터베이스 성능 한계 때문에 복잡해진 우리 소프트웨어도 단순하게 만들 수 있겠군요.”
 
하소는 1972년 4명의 IBM 동료와 함께 SAP를 창업한 후 현재까지도 감독이사회장을 맡고 있다. 최초의 글로벌 소프트웨어 회사를 세워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를 누빈 엔지니어 출신답게 기술의 디테일을 이해하는 능력과 글로벌 비즈니스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다. 그의 저택은 한반도 분단의 운명을 정한 포츠담회담 당시 처칠이 묵었던 곳이다.
 
“SAP HANA 인메모리 데이터베이스 엔진과 미들웨어를 하나로 통합하고 하소 당신이 처음 만들었던 FICO도 인메모리 엔진에 맞게 새로 만드는 계획을 세우겠습니다.”
 
SAP 최고혁신책임자가 된 비샬 시카가 실리콘밸리의 팔로 알토에서 덧붙였다. FICO는 기업의 수입과 비용 결산을 하는 SAP ERP의 핵심 모듈이다.
 
2005년 8월 스탠퍼드연구공원 내 SAP 팔로 알토 연구소에서 하소를 처음 만나 인메모리 패러다임 비전을 논의한 지 4년이 지나서야 패러다임을 바꿀 청사진이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의 1TB 메모리 HANA 서버.

새벽 2시에 시작한 콘퍼런스는 새벽 5시가 다 되어서 끝났다. 이 3대륙 콘퍼런스 이후 SAP는 전사적으로 HANA 개발과 사업화에 박차를 가했다. 비샬로부터 한국에서 최대한 빨리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뽑으라는 e메일이 왔다. 서울대의 20여 개 실험실 졸업생들을 모으고 유능한 인재를 팀으로 확보하기 위해 동료 교수의 검색엔진 회사를 인수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산업의 뉴 패러다임을 열 전사들이 꾸려졌다.
 
SAP HANA는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여러 대의 대용량 메모리 컴퓨터에 분산하고 이 분산된 데이터에 대해 압축한 상태에서 고속 병렬 질의와 기계학습을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술이다. 데이터베이스가 커지면 컴퓨터 수를 늘리거나 메모리 용량을 늘리면 된다. 대용량 메모리가 있어야 하지만 상장 기업의 분기결산같이 몇 시간, 몇 일 걸리던 작업과 기업 경영진의 실시간 의사 결정에 필요한 분석을 몇 초 내 실시간으로 가능하게 한다. 남보다 앞서 HANA 기술에 투자할 가치가 설득되자 2008년 금융 위기를 지나며 변화를 모색하던 기업들이 앞다투어 이 기술을 채택했다.
 
SAP 내부의 변곡점을 만들어 낸 최초의 1TB 메모리를 확보하기 위해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장에게 SAP HANA 비전을 설명했다. 권 사업부장은 흔쾌히 지원을 약속했다. 전사적 SAP HANA 개발이 시작된 후에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1TB 메모리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문제였다.  SK 하이닉스의 신사업 담당 박성욱 부사장이 SAP 한국 연구소를 방문했다. 필요한 만큼의 1TB 메모리 공급을 약속했다.
 
SAP HANA는 대용량 메모리 컴퓨팅을 가속시켰다. 데이터센터 메모리 사업이 삼성과 하이닉스의 주력 사업이 됐다. SAP HANA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기여한 것이다. SW 전문가도 아닌 권오현, 박성욱 두 사람이 SAP 프로젝트에 희귀한 대용량 메모리를 선뜻 내준 것은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두 사람이 각각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에서 회장, 부회장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니다.
  
잘나가던 ‘선마이크로’ 혁신 안 해 소멸
 
어떤 신기술이든 시간이 가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보편화되거나 패러다임의 전환을 일으킨 신기술에 밀려 사라진다. 스탠퍼드에서 창업해 실리콘밸리의 모델이던 선마이크로 시스템은 컴퓨팅 패러다임 전환을 따르지 못해 소멸된 예다. 이 회사 연구소 부지를 인수한 페이스북은 없어진 회사의 사인을 그대로 두고 페이스북 사인을 걸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선마이크로 시스템 같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2000년대 중반까지 오라클과 SAP는 세계 데이터베이스와 ERP 시장을 나누어 협력하던 파트너였다. SAP와 오라클은 다른 전략을 취했다.
 
닷컴 붕괴와 9·11을 지나면서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 시장 성장이 둔화되자 인접 분야의 기업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CRM 회사 시벨과 미들웨어 회사 BEA를 인수했으며, 인사관리분야의 피플소프트를 적대적으로 인수합병(M&A)했다. 쇠락한 선마이크로 시스템까지 인수했다.
 
SAP엔 오라클이 갑자기 큰 위협이 됐다. SW 기업의 장점인 탄탄한 유지보수 수입은 변화의 절박함을 가리는 독이 됐다. 순혈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하소는 이스라엘 창업국가의 아이콘인 30대의 샤이 아가시를 영입해 SAP 기술 총괄 사장으로 만들었다. 그는 혁신의 피를 수혈하기 위해 나의 벤처를 인수했다.
 
SAP M&A후 첫 내부 워크숍에서 샤이가 말했다. “만약 차 교수가 SAP에서 실패한다면 당신들 모두가 같이 실패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교수 창업가에게는 거대한 기업은  정글이었다. 샤이가 말했다. “당신이 한국에 있는 것이 두 가지면에서 다행스럽다. 첫째, 실리콘밸리 경쟁사들이 아무도 한국에서 SAP가 이런 심각한 연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고, 둘째, 거대한 SAP의 내부 정치로부터 당신이 떨어져 연구와 개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샤이가 전기차 인프라 벤처 베터 플레이스(Better Place)를 만들어 나가자 한국에 있는 나는 레거시의 공격 대상이 됐다. 후에 최고혁신책임자가 된 비샬의 도움을 받아 원래 꿈꿔왔던 연구 개발 실험을 지속했다. 2008년 10월 미래 SAP HANA의 근간이 된 데모시스템을 만들어 SAP 내부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것은 SAP 최고 경영진에게 회사의 방향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2009년 하반기 은퇴한 후 공학한림원 공동의장으로서 독일 인더스트리 4.0 개념 정립을 선도한 헤닝 카그만 CEO가 회사의 구조 조정을 이끌었다. SAP 본사의 아웃라이어 친구 프란츠 파버와 한 팀이 되어 HANA 프로젝트를 끌어 갔다. 카그만 박사는 이후 2017년 베를린의 공학한림원에서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버티며 SAP HANA 연구 개발을 이끈 점에 대해 개인적으로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계속〉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