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원은 2013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처음 문을 연 리빙&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다. 수많은 물건과 브랜드 중 소수의 물건만 선별해 소개하는 편집숍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바로 선별 기준이다. 어떤 물건을 어떻게 편집해 보여줄 것인지, 즉 편집자의 안목이 관건이다.
챕터원은 국내 리빙 편집숍 중 편집자의 안목이 탁월한 숍으로 꼽힌다. 2013년 가로수길에 문을 연 첫 번째 숍 '챕터원 셀렉트'는 그동안 서울에선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감각의 공간이었다. 당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북유럽 스타일이 아닌, 챕터원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여 이목을 끌었다. 미국 브루클린의 이름 없는 작가가 만든 독특한 인형이나 국내 공장에서 제작한 마블 트레이, 국내 공예 작가의 그릇 등을 소개했다. 챕터원에 가면 새롭고 괜찮은 것이 있다는 입소문이 났고, 요즘 유행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엿보려면 꼭 들러야 할 매장으로 자리 잡았다.
2016년에는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챕터원 꼴렉트'를 냈다. 고급 주택의 차고를 빌려 시원한 층고가 돋보이는 매장을 내고 당시 국내 리빙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브라질 가구와 아프리카 소품, 국내 공예가의 모던한 소가구 등을 제안했다.
챕터원의 참모습을 보여준 매장은 2018년 문을 연 잠원동의 '챕터원 에디트'다. ‘아시아의 무릉도원’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무성한 가지를 내려트린 식물과 수석, 동물 박제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에 토기·불상 등 아시아 수공예 작품들을 전시했다. 나무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가구와 옻칠 된 쟁반 등 90% 이상이 한국 작가들이 만든 수공예품으로 구성됐다. 여느 리빙 편집숍에선 볼 수 없는 과감한 시도였다.
이후 챕터원이 제안했던 많은 것이 국내 리빙 시장에서 유행했다. 이국적 공간을 만들어주는 페르시안 러그, 마블 트레이 같은 물건 단위의 유행은 물론, 공예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과거와 달리 소반·유기그릇 같은 한국 공예가 주목받는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챕터원이 제안했던 식물 인테리어는 이제 카페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인테리어 트렌드가 됐다.
서울 라이프스타일 기획자들⑩ 챕터원 김가언?구병준 대표
“유행하는 것보다 좋은 것을 제안하고 싶다”
두 사람을 지난 1일에 만나 인터뷰했다.
- 논현동 가구거리만 가도 리빙 편집 매장이 많다. 챕터원이 특별한 이유가 뭘까.
- 구병준 “많은 편집숍이 브랜드를 내세우지만 우리는 오히려 브랜드를 감추고 챕터원의 공간 구성 콘셉트에 맞는 물건만 내세웠다. 아예 새로운 그림을 만든 것이다. 지금 한남점만 해도 200개의 브랜드가 모여 있는데 이를 각각 설명하기보다 우리가 만든 하나의 큰 이미지 안에서 돋보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게 차별점이 아닐까.”
- 제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
- 구병준 “검증받은 좋은 물건을 고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우린 저평가된 좋은 것을 가져와 새롭게 알리고 싶었다. 예를 들어 챕터원 매장을 내기 직전 미국 브루클린에 갔다가 벼룩시장에서 인형을 하나 발견했다. 어떤 흑인 여성이 자신의 아이가 그린 그림을 인형으로 만든 건데 참 예뻤다. 그 분이 너무 안 팔려서 이것만 팔고 끝낸다는 걸 명함을 주고 있는 물건을 다 받아왔다. 챕터원에서 그 인형이 너무 잘 팔려서 그 작가는 공장을 다시 돌렸다. 브랜드 명성을 앞세워 질이 좋지 않은 물건을 비싸게 파는 걸 너무 많이 봐왔지 않나. 개인이 정성 들여 만든 것이 브랜드가 없다는 이유로 판매처를 찾지 못해 사라지는 일이 많다. 그런 제품들을 소개하고 싶다.”
- 직접 제작하는 상품도 많다.
- 구병준 “50%가 넘는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를 위해 10개의 아이템이 필요하면 그 중 8개는 현실에서 구하기 어렵다. 그러면 국내 공장이나 디자이너, 공예가들과 협업해서 만든다. 처음 가로수길 매장부터 그런 생각을 했지만 당시엔 실현하기 어려웠다. 제품을 직접 제작하는 리빙 매장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시도는 꾸준히 했다.”
- 덕분에 한국 공예 작가들이 많이 발굴됐다.
- 김가언 “한국의 공예품이 일본보다 저평가되는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국내 작가 양성에 책임감을 갖고 노력했던 부분들이 챕터원을 특별하게 만든 것 같다.”
- 과거엔 한국 작가들과의 제품 협업 자체가 생소했다.
- 구병준 “숍을 내기 위해 200명의 공예가와 미팅을 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완성품이 나오기까지는 거의 2년 정도 소통해야 한다. 그런 지난한 과정들을 여러 번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과정이 조금씩 수월해졌고, 우리처럼 하는 곳들이 생기면서 공예 시장이 커졌다. 잠원동 챕터원 에디트는 90% 이상, 한남점은 70% 정도가 국내 작가 제품이다.”
- 챕터원이 제안하는 트렌드는 항상 조금씩 빠른데 적중율이 높다. 비결이 뭔가.
- 김가언 “한국은 유행의 흐름과 주기가 굉장히 빠르다. 우린 오히려 유행을 피하고 길게 봤을 때 좋은 걸 제안했고, 좋은 물건은 고객들이 먼저 알아보더라.”
- 챕터원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나.
- 구병준 “갤러리에서 일할 때 외국 손님이 '한국만의 특별한 공간에 가고 싶다'고 하면 난감했다. 우리만의 정체성을 가진 세련된 숍이나 공간을 보여주고 싶은데 없었다. 외국 사람들에게 '이게 요즘 한국 사람들이 찾는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 ‘한국형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구병준 “정의하긴 어렵다. 그냥 보여줄 수밖에 없다. 잠원동 챕터원 에디트점에 온 외국 사람들은 ‘중국도 일본도 아닌, 한국만의 독특한 감성이 느껴진다'고 하더라.”
- 앞으로의 목표는.
- 김가언 “한국 리빙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해외에 소개하고 싶다. 한식과 K팝이 성공했듯, 한국의 디자인·공예·라이프스타일을 알리고 싶다. 때문에 숍 형태보다는 공간 연출, 전시 기획 등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