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이겨내자, 눈보라 속에서도 봄 준비한 꽃망울처럼…

중앙일보

입력 2020.03.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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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명주의 비긴어게인(25)

 
“어머나, 이것 좀 봐.”
지인과 함께 가까운 산에 오르는 중이다. 코로나 사태로 모든 업무일정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일정표에서 외부일정이 모두 지워지고 그 자리에 전화나 이메일로 업무를 대체하고 있다.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코로나 사태로 답답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에 올라가는 길이다.
  

깊은 산 속 잎사귀 하나 없는 민둥 가지에 여기저기 움이 트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다가올 봄을 이들은 이미 준비해온 것이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는 놀라운 생존력이다. [일러스트 강경남]

 
꽃망울이다. 잎사귀 하나 없는 민둥 가지에 여기저기 움이 트고 있다. 다른 나무들에도 시선이 간다. 싹이 트려고 하는 자리에 아주 조그만 마디 마디가 형성되어 있다. “죽은 나무가 아니네. 살아 있었네. 와 대단하다.” 우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탄성을 지었다.
 
깊은 산속의 겨울, 얼마나 추웠겠는가, 그 눈보라 치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어 내고 다가올 봄을 이들은 이미 준비해온 것이다. 하찮게 보이는 나무이건만 지난해 무성했던 화려한 옷은 다 벗어 던지고 다가올 재난, 엄동설한에 대비한 것이다. 오히려 재난 뒤에 찾아올 새로운 봄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놀라운 생존력을 보면서 지난 일이 떠오른다.
 
“이거 꼭 해야 하나요?” 
금융기관 IT 감사부 시절, 전산부서 감사 중에 전산운영관리 직원의 항변이다. 지금은 전산관리 시스템이 자동화돼 별다른 수작업 없이도 자동으로 전산 업무가 진행되고 있지만 금융권 전산 시스템 초창기에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전산 업무가 진행되었다. 


수작업이 수반되면 그만큼 에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전산 업무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처리하기 위해, 순서를 뒤바꾸지 않고 정해진 절차대로 전산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전산 업무체크리스트가 제작되어 전산 관리업무 매뉴얼에 첨부되었다.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에서는 리스크가 그 무엇보다도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 분야별로 리스크 요인을 찾아내 분석하고 해당 리스크 규모를 파악하여 그에 맞는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사진 pxhere]

 
전산부 관리직원은 이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전산 업무 하나하나 점검해가면서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전산 업무 매뉴얼은 업무 시작 전 이른 아침 정해진 시간에 시스템 가동하는 시점부터 업무 마감 후 전산 마감 시까지 주요한 업무에 관한 절차와 지켜야 할 사항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 규정집이다. 업무종료 후 그 규정에 따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 바로 데이터 백업(Data Back-up) 작업이다.
 
이 작업은 전산 테이프에 모든 전산 데이터를 복사하는 과정이다. 일명 데이터 백업 뜨는 작업이다. 업무종료 후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늦은 밤 몇 시간 동안 이 작업을 해야 한다. 특히 월말, 분기 말, 연말인 경우에는 그 작업량이 많아진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전산 백업작업을 두 번 한다. 하나는 내부(Onsite) 보관용, 또 다른 하나는 외부(Offsite) 보관용이다. 만약 본사 전산센터 문제 발생 시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외부에서 전산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비상용(Back-up)전산센터를 외부에 별도로 설치해둔다. 정기적으로 본사 전산 시스템과 같이 잘 운영이 되는지 시험가동을 해봐야 한다. 시험가동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계속 보완 수정해 실제상황에서 발생할 문제를 최소화해간다.
 
IT 감사업무는 주로 임의점검(Surprised Site Visit)으로 현장점검을 나간다. 이러한 제반 업무 규정을 제때에 제대로 실행했는지 점검하는 업무다. 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직원은 지난 몇 해 동안 별일도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일련의 업무를 굳이 이렇게 철저하게 왜 해야만 되는지 반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건물 주변에 대형 정전사고가 났다. UPS(무정전전원장치)가 가동되긴 했지만, 정전사태 복구작업이 지연됨에 따라 상황이 비상 상태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꼭 이거 해야 하나요’ 투덜거리면서도 성실히 해온 백업시스템이 문제없이 가동되어 고객에게는 다소 업무가 지체되는 것 이외에는 별 탈 없이 무사히 업무를 처리를 할 수 있었다.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금융기관에서는 리스크가 그 무엇보다도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 리스크위원회를 설치해 주기적으로 점검한다. 먼저 분야별로 리스크 요인을 찾아내 분석하고 해당 리스크 규모를 파악하며 그에 맞는 리스크 대응 전략을 수립해 리스크를 완화하도록 해야 한다. 리스크 발생에 대비하는 비상대책(Contingency Plan)도 반드시 수립해야 한다. 각종 재난 발생 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고객에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계획을 사전에 마련하여 늘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시험가동 해봐야 한다.
 

어느새 피어오르는 새싹과 터질듯한 꽃망울을 품고 있는 봄의 나무가 봄 햇살에 더욱 빛나게 반짝인다. 그들의 생명력 넘치는 봄의 에너지를 받아보자. [일러스트 강경남]

 
지난 30년 이상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근무하면서 몸에 밴 습관이 있다. 리스크 관리 습관이다. 업무를 주면 업무 파악과 함께 업무와 관련한 리스크 분석부터 먼저 한다. 아무리 영업을 잘하고 고속 성장한다 해도 어떠한 사건이나 재난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봐왔다. 성장도 중요하지만, 성장을 뒷받침해주는 리스크 관리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 평소 연습한 위기관리 절차에 따라 현장 중심으로 진행해야 한다. 자만이나 요행은 금물이다. 직원의 안전과 고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나라별 대처상황이 연일 뉴스에 나온다. 선제적으로 미리 사전에 준비한 나라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고 있다. 등산길에서 본 나무를 보면서 그들의 위대함에 숙연해진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불리는 우리의 오만한 자화상 앞에 그만 고개 숙어진다.
 
어느새 피어오르는 새싹과 터질듯한 꽃망울을 품고 있는 봄의 나무가 봄 햇살에 더욱 빛나게 반짝인다. 그들의 생명력 넘치는 봄의 에너지를 받아보자. 희망을 가지고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를 침착하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자. 서로서로 위해주면서.
 
WAA인재개발원 대표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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