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울 것도 없는 외래어 표기법 문제를 굳이 꺼낸 이유는 최근 국내에서 단편소설집이 번역 출간된 미국의 한 호러 작가 이름 때문이다. 지난주 기사로도 소개했지만 과거 이 작가의 소설을 출간한 황금가지는 작가 이름을 리처드 매드슨이라고 표기했다.(중앙SUNDAY 3월 21일 21면)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을 낸 현대문학이 외래어 표기법을 따랐다며 이번에 매시슨이라고 표기했다. 기자는 처음에는 매시슨과 매드슨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몰랐다. 책날개 작가 정보를 보고서야 동일인임을 알게 됐다.
외래어 표기, 근본적으로 한계
정부가 나서 개선하는 방법 없나
다년간의 외국어(주로 영어) 수련 덕에 형성된 우리 마음속의 발음기호. 그것과 동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한글 표기. 여기서 생겨나는 혼란은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북아프리카 에리트레아 출신 WHO 사무총장, 옮겨 놓은 한글 표기도 무척 읽기 어려운 이 분 이름을 둘러싼 혼선 말이다.
AI가 여러 방면에서 인류를 능가하는 마당에 이런 문제의 속 시원한 해결책은 없는 걸까. 결론을 당겨 말하면, 없다.
‘우리의 외래어 표기법은 완벽하지 않다. 음운체계가 다른 가령 영어를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혼선이다. 헷갈리더라도 원칙에 따른, 마음속 발음기호와 차이 나는 생경한 외래어 한글 표기가 익숙해지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서울대 언어학과 권재일 명예교수, 『한판 붙자, 맞춤법』의 저자 변정수씨. 기자가 자문한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창비 같은 거대 출판사는 반기를 든다. 경음(가령 ㄸ, ㅃ)을 사용하지 말자는 표기법 원칙을 거부하고 이딸리아, 빠리, 같은 표기를 고수한다. 혼란이 더할 수밖에 없다.
민간이 따르지 않는다면 역시 정부가 나설 수는 없는 걸까. 당분간 큰 혼란을 감수해야겠지만 외래어 표기법을 손보거나, 아니면 현행 표기법을 따르지 않는 민간을 달래거나. 가뜩이나 삶이 위태로운데 구약 시대 바벨탑 아래인 것처럼 말까지 어지러워 해보는 소리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