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KBS TV를 통해 미국드라마 ‘엑스파일’을 본 시청자라면 주인공 폭스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와 데이나 스컬리(질리언 앤더슨)를 더빙 성우 이규화‧서혜정의 목소리로 기억할 것이다. 요즘 넷플릭스로 ‘킹덤’을 보는 외국인 시청자들은 주지훈‧배두나 등 출연진을 더빙 성우의 목소리로 기억할지 모른다. ‘킹덤2’의 경우 29개 언어 자막 외에 영어‧일본어‧스페인어 등 13개는 더빙판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4관왕의 ‘기생충’ 역시 독일‧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더빙판으로 개봉돼 자막에 익숙지 않은 서구인들의 감상을 도왔다.
넷플릭스 '킹덤2' 13개 언어 더빙판 제공
'태양의 후예' 등은 국내서 더빙 해외방영
"한국문화 이해해야 자연스러운 연기 가능"
언어별 오디션 통해 더빙 성우 뽑아
최근 3년 동안 이들 팀이 더빙한 드라마는 ‘낭만닥터 김사부’(아랍어‧러시아어) 등 20여개에 이른다. 모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한류 증대를 목적으로 해외배급 지원사업으로 추진한 것들이다. 진흥원 측은 “한국 콘텐트가 잘 알려지지 않은 구소련 연방국가, 영어권 아프리카 지역, 중동(MENA) 지역 TV(지상파, 케이블, 위성 포함)에 자막 및 더빙 버전을 무상으로 배급한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과 아제르바잔 등에서 러시아어로 방영된 ‘쇼핑왕 루이’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흥미로운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고 한다.
연기력만큼이나 한국 문화 이해 중요
아리랑TV 더빙 성우들은 대체로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국가 출신 가운데 오디션으로 뽑혔다. 한국 거주 외국인이 늘고 K팝‧드라마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경쟁률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일부는 연기나 음악 전공자도 있다.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 역(유시진)을 맡았던 헌터 콜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K팝그룹 'EXP에디션'의 멤버다.
김형우 콘텐트제작팀장(PD)은 “가장 중요한 건 현지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들려야 하는 거라 실제 배우와의 목소리 싱크로율보단 연기력 자체를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도로시 남은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의 이영자를 더빙할 땐 그의 쾌할한 성격이 잘 전달되게 연기하는 식”이라고 했다. 김 PD는 “한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선 아마추어들이 불법 더빙한 버전이 도는데 양질의 더빙‧자막 버전을 보여줘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미 배우조합과 계약 더빙 활발
일각에선 더빙이 자막에 비해 오리지널 콘텐트를 훼손한다고 지적하지만 잘 된 더빙이 작품 이해를 높인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미국의 경우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자막이 아닌 더빙 버전을 선택하는 비율이 70~80%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다만 더빙 제작이 자막에 비해 10배 가량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게 제공된다. 김 PD는 “더빙이냐 자막이냐는 ‘규모의 경제’ 문제”라면서 “한국 콘텐트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을수록 더빙에 투자하는 업체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