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문 M여행사 S(54) 대표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20년 넘게 여행사 밥을 먹으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면서도 “설부터 추석까지 매출 0원”이라는 막막한 현실을 남의 일처럼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일본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지난해 하반기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의 20% 아래로 추락했어도 희망을 말했던 그다. 지금은 아니다. 여행이 금지된 시대, 여행사에 희망은 사치가 돼 버렸다.
매출 0원 시대의 계산법
매출 0원 시대. 여행사는 지출이라도 줄여야 한다. 여행사 지출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임대료와 인건비. 임대료는 어쩔 수 없으니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해고는 일단 자제하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고용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23일 현재 고용노동부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한 1만7866개 업체의 13%(2328개 업체)가 여행사다.
현재 여행사의 근무 형태는 두 가지다. 주3일 근무제 또는 무급 휴직. 주3일 근무제도 재택근무가 원칙이다. 차례를 정해 최소 인원만 출근한다. 사무실에 나와도 어차피 일이 없다. 여행사가 주3일 근무제를 시행한다면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영세 업체 대부분은 정부 지원금도 포기하고 무급 휴직을 선택한다.
지난주부터 불길한 소문이 들려온다. 주3일 근무제를 시행 중인 여행사 중 몇몇이 주3일 근무제 해제 검토에 들어갔다고 한다. 왜 이게 불길한 징조일까.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여행사가 먼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면 정부가 임금의 90%를 여행사에 준다. 나머지 10%는 여행사가 떠안는 구조인데, 그 10%도 이젠 버겁다는 얘기다. 매출 0원 시대이어서 가능한 계산이다.
2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국내 여행사 23곳이 휴업했고, 95곳이 폐업을 신고했다. 솔직히 휴·폐업 통계는 의미 없다. 사실상 모든 여행사가 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별무소용 문체부 지원
인바운드 전문 T여행사의 문체부 특별융자 일정표다. 문체부는 2월 17일부터 관광업계를 대상으로 무담보 신용보증 융자 정책을 시행 중이다. 업체당 최대 2억원까지 지원이 가능하며 전체 예산은 한차례 증액을 거쳐 1000억원을 마련했다.
T사는 상담 신청을 한 지 35일이 지났는데도 지원금을 못 받고 있다. 아니, 본격적인 검토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이 점에서 T사의 사례는 지극히 보편적이다. 문체부 융자 절차는 매우 느리다. 여행사들이 문체부 융자를 외면하는 첫째 이유다.
문체부 특별융자는 3월 13일 기준 795개 업체가 신청했고 158개 업체가 선정됐다. 여행사가 금융 지원을 받으려면 5대 1이 넘는 경쟁률을 통과해야 한다. 여행사들이 문체부 융자를 외면하는 둘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내 여행사의 약 90%가 직원 10명 이내의 영세 업체다. 영세 업체 대부분이 신용 상태가 좋지 않다. 한국여행업협회 서대훈 부장이 정곡을 찔렀다. “메르스 사태와 중국의 사드 보복 때 빚을 낸 여행사가 신용보증으로 추가 대출을 받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문체부는 19일 개선책을 발표했다. ‘서울신용보증재단 인력 보강, 농협 전 지점 신청 접수’가 주요 내용이다. 이로써 대출 절차가 2주 안에 마무리되도록 개선하겠단다. 개선책에도 허점이 보인다. 당장 대출 조건을 못 맞추는 여행사에 대한 대책이 빠져 있다. 여행업계는 차라리 직접 지원을 하라고 아우성이다. 여행사 매출 0원 예약 0건의 시대, 몇 푼 안 되는 직접 지원도 실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터이다.
손민호·최승표·백종현 기자 ploves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