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한국 영화산업의 질적·양적 성장이다. 1998년 사전검열 등 각종 규제가 철폐되면서 자유롭고 다양한 작품이 나왔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오히려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높였고, 2003년 최초의 1000만 관객 영화인 ‘실미도’ 이후 영화시장은 급성장했다.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비결
검열 폐지 이어 스크린쿼터 축소
2000년대 한국 영화 경쟁력 강화
백인 중심 아카데미도 다양성 강조
이처럼 ‘기생충’의 쾌거는 꾸준히 세계무대에 도전해 온 한국 영화인들의 노력이 축적된 결과다. 물론 작품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기생충’이 세계의 관객들과 깊은 공명을 일으킨 이유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향해 던진 묵직한 주제의식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기생충’을 ‘올해의 영화’로 선정한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현대사회를 반지하와 대저택으로 은유하며 계급투쟁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가디언도 “빈부격차의 담론에 굶주린 젊은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충격적인 것은 자본주의 본고장인 미국 청년들의 인식 변화다. 18~29세 청년 대상 갤럽 조사에서 ‘자본주의를 좋게 평가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2010년 68%에서 2018년 45%로 급감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 황금기를 겪은 부모 세대와 달리 2008년 금융위기로 실업과 파산을 보고 자란 청년들은 불평등을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여긴다”고 했다.
한국의 불평등은 2000년대 이후 본격화됐다. 1980년 7.4%였던 상위 1%의 소득점유율은 1995년 7.2%로 오히려 완화됐다. 경제성장과 함께 중산층이 두터워진 덕분이다.
그러나 2000년(8.3%) 이후 늘기 시작하면서 2015년 12.1%로 급증했다. “날로 극심해지는 빈부격차의 실상을 실감나게 보여줬다”는 북한 선전매체(‘조선의 오늘’, 2019년 6월)의 ‘기생충’ 평론과 일치하는 지점이다.
1848년 2월 “공산당이라는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던 마르크스의 표현(공산당선언)이 나온 것도, 1392년 토지 세습과 음서제로 부와 권력을 움켜쥔 권문세족을 신진사대부가 무너뜨린 것도 근본 원인은 불평등 때문이었다.
토마 피케티는 1700년대 이후 20여 개국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며 “심각한 양극화로 자본주의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21세기 자본』). “돈이란 다리미로 주름살까지 펴는”(엄마 충숙의 대사) 자본주의의 임계질량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윤석만 사회에디터 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