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스크린’ ‘로드쇼’ 등 영화 잡지를 보며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연세대 사회학과)해 ‘노란문’이라는 영화 동아리를 만들며 본격적으로 영화 인생에 발을 디뎠다. 이후 한국영화아카데미에 11기로 들어갔고, 1999년까지 충무로에서 조연출과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장편 데뷔작은 블랙코미디 ‘플란다스의 개’(2000). 흥행은 실패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제작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는 손실을 보고도 봉 감독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그와 손잡고 2003년 ‘살인의 추억’을 제작, 525만 관객을 모았다.
아카데미 4관왕 봉준호 감독은
중학생 시절부터 영화감독 꿈 꿔
첫 장편 실패 뒤 괴물·옥자 신기록
“영감 주는 아내에 감사” 수상 소감
이후 그의 이력은 신기록 행진이다. 2006년 ‘괴물’로 1301만 관객을 모으며 당시 역대 흥행 신기록을 달성했고, 2013년 다국적 프로젝트로 제작한 ‘설국열차’는 167개국에 판매돼 한국 영화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2017년 ‘옥자’는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영화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4관왕을 이룬 ‘기생충’(2019)의 신기록 행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는 예술가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2017년 작고한 그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인 봉상균씨, 외할아버지는 월북 작가인 박태원(1909~1986)이다.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작가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을 썼다. 형은 봉준수 서울대 영문과 교수, 누나는 연성대 패션산업과 교수인 봉지희씨다. 봉 감독이 9일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 무대에서 “언제나 많은 영감을 주는 아내에게 감사한다”며 언급한 아내는 그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지리멸렬’(1994)에 스태프로 참여한 정선영씨. 1995년 결혼했다. 2017년 YG케이플러스의 웹무비 ‘결혼식’을 연출한 봉효민 감독이 아들이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