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사장에게 직접 보고했어? 부장이 버럭 화를 내는 회사

중앙일보

입력 2020.01.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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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최인녕의 사장은 처음이라(11)

입사 5개월차인 차대리는 화장실에서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 네. 회사 적응 잘하고 있나요?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고요?”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서비스 개편 프로젝트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존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포맷으로 진행하기에, 일부는 외주 용역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네, 외주까지 고려할 정도면 개편 범위가 크네요. 알았습니다. 수고하세요.”
 

입사 5개월차인 차대리는 우연히 사장님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튿날 A부장이 몹시 화난 표정으로 고과장과 함께 차대리를 불렀다. [사진 pxhere]

 
차대리가 B사로 이직한지 5개월만에 처음으로 사장과 나눈 대화였다. B사에서는 직원이 사장과 단독으로 미팅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업무에 관련된 모든 보고는 부서장인 A부장을 통해 사장에게 전달되고, 의사결정 또한 A부장을 통해서 듣는다. 매월 혹은 분기별 실적 보고가 있지만 이 역시도 A부장이 보고를 하고 답변도 하기에,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은 발언할 기회가 거의 없다.
 
차대리는 입사해서 사장을 볼 일이 없었다. 가끔 다른 직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장님은 너무 높이 계셔서 뵙기 어려워요’ 차대리에게 사장님은 높은 곳이 아닌 다른 먼 곳에 거주하면서 가끔 방문하는 이방인 같았다. 그러기에, 화장실에서 만난 사장님과의 짧은 시간이 차대리에게는 매우 특별했으며, 사장님의 관심에 힘입어 서비스 개편을 더 열심히 준비하겠다는 열의마저 살짝 생겼다.
 
이튿날, A부장은 몹시 화난 표정으로 고과장과 함께 차대리를 불렀다.


“차대리가 사장님과 프로젝트 상황에 관해 직접 얘기를 나눌 직급이라고 생각하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사회생활은 해봤다며. 도대체 그런 예의 없는 보고 방식은 어디서 배웠나? 아니 고과장은 직원이 이따위로 일하는데 그것도 안 고쳐주고, 대체 부하직원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A부장은 평소 직원들의 업무 실수나 성과 저조에도 이렇게까지 큰소리를 내면서 화를 내지는 않았기에, 차대리는 그야말로 멘붕 상태였다. 이 일을 통해 A부장이 가장 싫어하는 직원은 바로 ‘사장과 직접 소통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사수인 고과장과 함께 불려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심한 질타를 받은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 일 이후 차대리에게 A부장은 업무 내용과 성과보다는 형식과 자기만의 보고 방식을 고집하는 불통의 꼰대로 선을 긋게 되었다. A부장을 통해 본 사장은 역시나 이 회사가 아닌 다른 세계에 살며, 신비주의를 자처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차대리 사건' 이후 A부장은 사장님 보고 회의를 위한 ‘리허설’을 만들었다. 이 리허설은 A부장의 의견으로 통일된 답안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사진 pixabay]

 
한편, 차대리 사건 후유증으로, A부장은 사장님 보고 회의를 위한 ‘리허설’을 만들었다. 사장님에게 보고하는 내용 뿐만 아니라, 사장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하고 A부장이 최종 확인하기 위함이다. 결국, 이 리허설은 A부장의 의견으로 통일된 답안을 만드는 과정이다. 급속한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좀 더 빠른 의사 결정과 혁신을 요구하는 고과장의 제안은 이번에도 후순위였다.
 
리허설을 통해 사장과의 소통 통로는 A부장으로 더욱 확실해지고, 고과장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의 아이콘인 A부장을 먼저 이해시키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회사는 A부장의 개인적 경험과 견해 내에서 승인될 수 있는 일만 할 수 있기에 더 이상의 회사 발전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고과장은 A부장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는 사장이 게으르고 무능하다고 생각했다.
 

편하고 효율적인데, 뭐가 문제지?

B사는 성장과 정체를 반복해오면서, 조금씩 수익을 내는 회사다. 창업 초기부터 일했던 A부장은 전반적인 회사업무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동안 문제없이 성실하게 일해왔다.
 
A부장은 사장과 가장 오래 일했기에, 누구보다 사장의 성향과 관심사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으며, 사장 입장에서 A부장은 소통하기에 익숙하고 편한 사람이다. 또한, 사장은 A부장을 통해 요약된 정보를 듣고, 필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에, 시간 관리 차원에서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사장이 A부장을 통해 소통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A부장이 회사의 복잡한 여러 상황을 잘 정리하면서 ‘다 알아서 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A부장이 어떤 이유에서 부재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사장에게 더 큰 불편함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사장은 A부장의 소통 방식이나 업무 운영에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심각하게 자신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한, 크게 부각하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Open door policy’, 직원의 다양한 의견을 사장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리는 것

'Open door policy'의 진정한 의의는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사장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리는 데에 있다. 사장이 특정 임직원과만 소통하거나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다각화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인 셈이다. [사진 pixabay]

 
B사 사장의 회사 운영 방식에서는 ‘사장의 편함’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사장의 편한 운영 방식은 불통과 통제를 만들고, 직원을 무기력하고 냉소적으로 만든다. 의욕과 열정이 충만한 직원들은 사장의 소통 방식에 변화가 없다면, A부장의 역량이 곧 회사의 역량이기에 회사의 미래가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회사 규모와 관계없이 사장은 다양한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자리다. 회사 규모가 크다면 다양한 리더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가 필요하고, 규모가 작다면 여러 직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직원들의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효율적으로 듣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바로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이다. 사장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에 필요한 ‘효율성’은, 한 명의 임직원에게만 보고받는 데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의 효율성, 소통 방식의 효율성에서 나온다.
 
‘Open door policy’는 시도 때도 없이 모든 직원이 원할 때 사장실의 문을 두드리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Open door policy’의 진정한 의의는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사장이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리는 데에 있다. 사장이 본인 편의를 위해 특정 임직원과만 소통하거나 사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다각화하지 않는 것은 사장이 직무유기를 하는 셈이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리더는 다양한 직원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을 줄 안다. 직급이 낮은 직원의 의견은 덜 중요하다고 무시하거나, 본인이 편한 직원들하고만 업무 소통을 한다거나, 경직되고 수직적인 보고 체계 그 자체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리더는 결국 회사를 도태시킨다. 나는 어떤 리더인지, 우리 회사에는 다양한 직원과 소통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프로세스 혹은 소통 채널이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INC 비즈니스 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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