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러시아 국영 통신사 타스 등에 따르면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국정 연설 직후 이어진 정부 인사 간 회동에서 "내각은 대통령에게 모든 필요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면서 "현 내각이 사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자신을 포함한 내각 총사퇴 의사를 밝혔다.
총리 사임 발표는 집권 20주년을 맞아 열린 푸틴 대통령의 국정 연설 이후 이뤄졌다.
사임 발표 당시 메드베데프 총리 옆에 앉아 있던 푸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총리가 러시아 안보회의의 부의장을 새 직책으로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총리로는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 막심 오레슈킨 경제장관, 알렉산더 노박 에너지장관 등이 거론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AP=연합뉴스]
푸틴의 임기 종료 시기는 2024년 초다. 아직 4년이 남았지만, 푸틴의 초(超)장기 집권을 위해서는 기시감이 드는 메드베데프 대신 새 인물로 국민의 피로감을 덜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한때는 푸틴이 3선 개헌으로 대통령직을 거머쥘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그러나 반감을 살 수 있는 '무리한 3선 개헌'카드를 접은 것이 이번에 확실해졌다. 푸틴은 이날 '동일 인물의 대통령직 3연임 금지' 등을 포함한 부분 개헌을 제안했다. 이 제안이 실제 받아들여지면 같은 인물이 두 차례 대통령을 한 뒤 3연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대통령 카드를 접은 푸틴은 총리로 눈을 돌렸다. 이날 국가 두마(하원)에서 열린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은 의회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제의했다. 개헌안은 대통령제는 유지하되 총리 임명을 비롯한 의회 기능을 대폭 강화해 실권이 총리 중심으로 옮겨가도록 하고 있다.
2024년 대통령 임기는 끝나도 푸틴이 또다시 '실세 총리'가 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영국 가디언지는 푸틴의 정적이자 야권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리의 코멘트를 인용해 "푸틴이 2024년 떠날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어리석은 자"라고 짚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AP=연합뉴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푸틴 대통령이 3선 개헌 대신 실세 총리로서 집권 계획 방향을 틀은 것으로 보인다. [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