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풀, 내 마음이 궁금해’ <10> 불교와 명상
“우리는 ‘내 것’이라고 집착한 것 때문에 걱정하고 근심한다. 자기 자신도 영원한 존재가 아닌데 자신이 지닌 것들이 어떻게 영원할 수 있을 것인가.” 언뜻 무뚝뚝해 보이기도 하는 법정 스님의 문체는 평범한 말에 담긴 어떤 힘을 느끼게 한다. 평범 속의 비범이라고 할까.
현대 명상 포용한 국제불교박람회
MBSR 등 마음챙김 행사 3일간 성황
명상, 동양서 서양 갔다 회귀한 셈
‘무소유’ 법정 스님 글과도 통해
하지만 명상 방법에서 불교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도의 오래된 전통 요가에서부터 태국·미얀마 등 남방불교권의 위파사나, 한국의 전통 참선 등이 두루 서양의 명상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참선 혹은 선이란 말을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한국 불교계에서도 요즘은 참선 대신 명상이란 용어가 점차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과거에 동양의 전통 수행이 서양의 명상에 영향을 주었다면, 이제 다시 역으로 동양이 서양의 명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콘퍼런스는 3가지로 구성됐다. ‘죽음에 관한 명상(Being with Dying)’, ‘마음챙김 자기연민 명상(Mindful Self-compassion·MSC)’, ‘마음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MBSR)’ 프로그램이다. 3일간의 행사 일정 중 3종의 명상 프로그램을 하루에 하나씩 배치,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현대 명상의 주요 흐름을 압축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게 했다.
이번 행사에서 MSC 분야를 맡은 서광 스님, MBSR 분야를 맡은 안희영 한국MBSR연구소 소장은 모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며 ‘미국식 명상’을 배우고 왔다. 이들이 하는 현대 명상의 공통점은 ‘마음챙김’으로 번역되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다.
서광 스님은 “명상은 궁극적으로 자리이타, 즉 나도 이롭게 하고 상대방과 내 주변도 이롭게 하는 상생의 지혜를 찾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며 “MSC에서 굳이 자기 연민을 강조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자기를 너무 방치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광 스님, 효림 스님과 함께 16일
MSC 시간을 진행한 노스캐롤라이나대 의대 정신의학부 카렌 블루스 교수는 ‘인간 경험의 보편성’을 이야기했다. 청소년 교육에 MSC를 도입하는 방식을 연구해온 카렌은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만 마음의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청소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17일 MBSR 시간을 맡은 안희영 소장은 MBSR 명상 체험을 지도한 후에 다양한 전문가 토론을 기획해 눈길을 끌었다. 붓다락키따 스님, 전현수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민진희 JAI요가명상 원장 등이 참여, 각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마음챙김 명상의 의미를 풀어냈다.
아시아 첫 ‘MBSR 인증 지도자’ 과정 개설
문화는 서로 주고받게 마련이다. 마인드풀니스라는 이름의 현대 명상이 서양에서 한국으로 왔다면, 한국에서 숙성된 마음챙김은 이제 다시 또 서양으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서광 스님은 『치유하는 유식 읽기』 『단단한 마음공부』 등 저서를 통해 불교 ‘유식학(唯識學)’을 심리학의 일종으로 새롭게 풀어내고 있는데, 이를 마음챙김 명상과 연결해 서양에 다시 소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안희영 소장은 미국 브라운대학 마음챙김센터(Brown Mindfulness Center)와 협약을 맺은 사실을 이번 행사 중에 공개했다. 이 센터의 ‘MBSR 국제 인증 지도자’ 과정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한국MBSR연구소에서 대행하게 됐다고 한다. 수업의 공식 명칭은 ‘MBSR 지도자 기반 과정(MBSR Foundations)’이다. 한국의 마음챙김 명상은 새로운 도약의 실험대 앞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정 스님의 글로 다시 돌아가 보자. “명상이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과 다른 무엇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삶의 한 부분이다. 무슨 일에 종사하건 간에 자신이 하는 일을 낱낱이 지켜보고 자신의 역할을 지각하는 것이 명상”이라고 했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들과 정을 나누어야 한다”는 표현도 마음에 와 닿는다.
좌선·참선도 명상도 목적은 성숙한 삶
좌선이나 참선이나 명상의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행복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혜거 스님의 표현처럼 성숙한 삶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 인간이 성숙해진다는 것은 자신과 전혀 다른 마음을 가진 무수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뜻하고, 이것은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불교 수행의 핵심을 조화와 중도로 풀어내는 대목도 눈여겨볼 만하다. “불교 수행의 핵심은 조화다. 그 무엇이든 지나쳐도 안 되고 부족해도 안 된다. 조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을 버릴 때 이루어진다. 중도란 좌우의 양끝의 한가운데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집착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난 가장 적절한 상태를 말한다. 곧 부처가 제시한 바르게 사는 여덟 가지 길, 즉 8정도와 같은 개념이다.”
배영대 근현대사연구소장·철학박사 balance@joongang.co.kr
※ 이 기사는 중앙콘텐트랩에서 중앙선데이와 월간중앙에 모두 공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