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경주는 ‘제5회 세계한글작가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문했다. 내가 가장 기대했던 행사는 대회 마지막 날의 ‘문학역사기행’이었다. 전문가의 해설로 경주 관광을 즐겼다.
당나라 건축 영향받아 모양 비슷
제천 여행선 의병 유적지 알게 돼
옛 충남도청은 도야마현청과 닮아
시간 멈춘 듯한 철도관사촌도 들러
미처 잘 몰랐던 일본 역사에 눈떠
한·일 교역 역사 실크로드, 평화롭게 공유를
여러 설이 있지만 나라(奈良)라는 지명은 한국어의 ‘나라’가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나라와 교토(京都)는 둘 다 고도지만 조금 다른 느낌을 준다. 나라시대에는 국제교류가 활발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실크로드를 통해 외국의 문화가 많이 들어온 시기였다. 교토가 수도가 된 헤이안(平安)시대 이후에는 ‘일본스러운’ 문화가 발전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국적 냄새가 나는 나라를 좋아한다.
2015년 12월 유네스코 국제회의 때도 경주를 방문했다. 이때 한국에서는 실크로드의 종착점을 경주라고 보는 입장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본에서는 당연히 나라가 종착점인 줄 알고 있다. 매년 나라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쇼소인전(正倉院展)’은 줄 서서 보는 인기 전시다. 쇼소인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나라시대의 보물창고다.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외국의 미술품들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그 보물들이 공개되는 전시가 ‘쇼소인전’인데 매년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보러 온다.
2014년 실크로드의 일부가 ‘창안-톈산 회랑 도로망’으로 세계유산에 등록되면서 한국이나 일본에 연결되는 부분까지 등록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서로 ‘종착점’을 주장하며 경쟁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실크로드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교역 역사로 평화롭게 공유할 수 있는 재산이 아닌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제천이다. 제천은 매년 8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때 방문한다. 올해 영화제 때 제천시 관계자를 만나 제천이 ‘미식도시’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한방 건강식을 취재하고 일본 매체에 기사를 쓴 인연으로 이번에 새로운 미식 투어에 초대를 받았다.
제천은 일본에서는 거의 안 알려진 곳이다. 일본에는 한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많고 매년 영화제 개막식이나 공연이 펼쳐지는 청풍호반은 관광지로 매력적인 곳이어서 더 홍보해도 좋을 것 같다고 시 관계자에게 이야기해 봤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천은 원래 의병의 고장이라 적극적으로 일본 쪽에 홍보하지 않았어요.” 나는 의병에 대해 잘 몰랐다가 지난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보고 나서야 조금 알게 됐다.
물론 의병에 대해 배우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의병에 관련된 장소도 갔다. 걸어 다니면서 음식을 맛보는 투어였는데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걸어간 장소가 중앙공원이었다. 언덕을 올라가면 제천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인데 의병지휘소가 있던 곳이라고 들었다.
지방을 여행하면서 의병 관련 설명을 들은 건 처음이었지만,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때 피해를 입은 설명은 자주 듣는다.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역시 일본에만 있으면 모르는 것이다.
옛 충남도청은 1932년에, 도야마현청은 1935년에 지은 건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은 청사끼리 닮은 것은 이해가 간다. 내가 나라 다음으로 근무한 곳이 도야마였다. 현청 담당 기자로 매일 현청 기자실에 출근했다. 익숙한 공간이 갑자기 한국에 나타난 것처럼 느꼈다.
“제천은 의병 고장이라 일본에 홍보 안 해”
본격적인 일제의 침략과 함께 일본인들이 대전에 처음 들어온 건 1904년 전후로 대부분 철도와 관련된 기술자들과 인부들이었다. 1905년 경부선 철도가 완전 개통되고 그해 9월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下関)를 잇는 관부연락선이 연결되자 일본인들의 대전 이주는 더욱 급증했다고 한다.
대전역 근처 소제동 철도관사촌을 찾았다. 최근 멋진 카페나 레스토랑이 잇따라 생기고 있는 대전에서 가장 핫한 곳이라고 대전 현지 사람한테 들었다. 역시 일제강점기에 철도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옛날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 오래된 건물을 잘 살려서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익선다다’ 스태프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제동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건물이긴 하지만, 해방 후 74년이라는 그동안 대전 사람들의 역사도 있는 곳”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익선다다’는 ‘낡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오래된 것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을 찾으려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이 보이는 여행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건물은 한국사람들한테 불쾌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도 한국 역사의 일부다. 특히 나 같은 일본사람에게는 일본이 한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