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로드 모터사이클 아시아 일인자 류명걸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에 한국인 첫 출전
7800㎞ '죽음의 레이스' 내달 사우디서 열려
- 체력 소진이 많은 것 같다.
- “몽골 랠리에서 8일간 달리고 나니 6~7㎏이 빠졌다. 다카르에서는 12일간 10㎏ 빠지지 않겠나. 일주일에 닷새는 체력 훈련, 이틀은 라이딩 훈련을 해야 버틸 수 있다.”
그는 다시 로드의 리듬을 탔다. 크고 작은 둔덕을 만날 때마다 대퇴근과 대둔근을 긴장시키며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했다. 중심을 잡기 위해 허벅지 안쪽 내전근과 박근을 바짝 조였다. 핸들을 잡은 팔뚝 전완근부터 가슴의 대흉근까지 상체 근육이 움찔거렸다. 그는 다카르 랠리에서 이렇게 하루 15시간 이상 12일간 달려야 한다. 2020 다카르 랠리는 다음달 5일(현지 시각)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스타트한다. 류 프로는 오전 4시 15분에 출발한다. 11일 하루만 쉬고 17일 피니시 테이프를 끊는다. 7800㎞를 달려야 한다. 60개국 300개 팀 이상 참가한다. 부상과 사망이 이어져 죽음의 레이스라 불린다. 지난해 대회에서는 페루 리마에서 출발해 원점 회귀했다. 70%가 사막지대였다. 바이크 부문 137명 중 75명, 절반 조금 넘게(55%) 5000㎞ 구간을 완주했다. 이번에는 75%가 사막지대다.
- 위험을 무릅쓰고 출전하는 이유는.
- “꿈으로만 간직해 왔다. 참가는 생각지도 않았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차근차근 실력을 키웠다. 그러다가 모터사이클 입문 20여 년이 흘렀다.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겨스케이팅을 인기 종목으로 바꾼 김연아처럼 이정표를 만들고 싶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말이다. 바이크를 인기 종목으로 만들 작은 불씨가 되고 싶다.”
- 차량보다 바이크가 위험하다.
- “차량은 전복이 되더라도 시트와 벨트, 롤 케이지(roll-cage, 차량 내부의 파이프 형태 구조물)가 충격을 줄여준다. 내부라 심리적인 안정감도 있다. 하지만 모터사이클은 완전히 노출돼 있다. 모터사이클도 안전 장비가 있지만, 차량과 비교가 안 된다.”
- 다카르 랠리 목표가 있을 텐데.
- “일단 완주는 해야 하지 않겠나.”
2007년 국내 첫 우승을 시작으로 지난해 10월 멕시코 바하 랠리(1500㎞) 클래스1에서 1위로 들어갔다. 바이크 부문 전체 순위로는 8위. 2017년과 올해 몽골 랠리(4000㎞)에서도 우승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울퉁불퉁 오프로드처럼 험난했다. 2012년 태국 랠리에서는 길을 잃었다. 충격이었다.
아시아에서는 몽골·일본이 오프로드 바이크 부문에서 강세다. 류 프로 자신도 “처음에 몽골 선수들을 보니 번개 같았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아시아 일인자가 됐다.
- 몽골과 일본에 아시아 강자들이 많다.
- “몽골은 환경이 좋다. 드넓고 험한 사막에서 라이딩을 할 기회가 많다. 시력 6.0이라고 할 정도로 눈도 좋지 않나. 잘 보이면 판단을 빨리하게 된다. 일본은 저변이 넓다. 후원도 많다. 성능 좋은 바이크를 자체 생산한다. 한국은 모터도, 저변도, 후원도, 환경도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랠리 대회 자체가 없다.”
- 아시아 일인자가 완주가 목표라면 지나친 겸손 아닌가.
- “다카르 랠리 바이크 부문엔 통상 130~150명이 참가한다. 완주 비율이 50%가 안 된다. 30% 선일 때도 있다. 완주하면 종합 순위 50위권이다. 그것도 대단한 것 아닌가.”
- 몽골 선수 기록을 꼼꼼히 추적했다.
- “몽골 랠리에서 우승한 뒤 다카르 랠리에서 완주한 친구다. 내가 2017년 몽골 랠리 1위가 되자 이 친구의 기록을 샅샅이 뒤졌다. 기록을 비교하니 내가 더 잘한 것으로 나왔다. 나도 다카르에서 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 출전에 얼마나 드나.
- “최저 경비가 1억3000만원이다. 다른 랠리 경험이 있어야 출전 자격이 된다. 일종의 예선전이다. 이 비용까지 합하면 2억원. 현지 정비업자·스태프 등에 들어가는 돈까지 더하면 3억원이다. 씀씀이를 최소화하고 원활한 지원을 받기 위해 체코의 클림치브 레이싱팀과 협업한다.”
- 비용 마련이 쉽지 않았을 텐데.
- “기업 소속이 아니라 개인으로 참가하는 거다. 일종의 독립군이다(웃음). 얼마 되지 않지만 10년 다닌 회사 퇴직금을 보탰다. 차도 팔았다. 전세자금을 빼고 2년간 창고에서 숙식하며 훈련했다. 2018~2019년 랠리 대회는 그 돈으로 메웠다. 1만원, 2만원 주신 개인부터 중소기업 후원까지, 어렵게 마련했다. 사실 마이너스 상태다. 그래도 실망을 안겨주면 안 된다.”
해거름, 그가 다시 둔덕에서 솟구쳤다. 지켜보던 동호인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다카르 랠리에서의 목표치를 낮게 잡았다는 혐의가 짙다. 류 프로가 다카르 랠리에서 달 등 번호는 130. 해가 바뀌자마자 ‘130번’의 질주가 시작될 것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대회 창설자까지 … 70여 명 앗아간 '죽음의 레이스'
“메이데이! 메이데이!”
1989년 1월 아프리카 말리에서 다카르 랠리 창설자인 티에리 사빈(40·프랑스)이 탄 헬리콥터가 갑작스러운 모래 폭풍에 휘말려 추락했다. 사빈을 포함해 5명이 사망했다.
다카르 랠리에서 위험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번 42회 대회 7800㎞ 중 사막지대는 75%. 사막 지대가 어려운 이유는 첫째, 망망대해. 이정표가 될 만한 건물이나 나무가 드물다. 2015년 대회에서는 미칼 헤르니크(39·폴란드)가 코스를 이탈했다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둘째, 파도처럼 이어지는 모래 언덕. 2012년 페루 대회에서는 마르티네즈 보에로(38·아르헨티나)가 사구에 충돌해 사망했다. 모래 폭풍과 황량함·외로움 등도 영향을 미친다.
1979년 첫 대회 이래 다카르 랠리에서 70여 명이 사망했다. 그 중 28명이 ‘선수’다. 바이크 부문이 19명으로 가장 많다. 이 수치는 공식 발표된 게 아니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바티칸에서 “무책임한 유혈 경주”라고도 했다.
다카르 랠리는 원래 파리~세네갈 코스였다. 그러나 테러, 환경문제로 2008년 대회 하루 직전 갑자기 취소됐다. 이후 남미로 코스를 옮겼다가 이번에 중동으로 넘어갔다. 아시아(몽골)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우디 대회에서는 쌍용차가 3년 연속 참가한다. 외국인 선수가 핸들을 잡는다. 한국의 다카르 랠리 출전은 그동안 차량 부문, 특히 자동차 기업 소속에 한정됐다. 1988년 박정룡(기아차)을 시작으로 1993년 황운기(기아차)가 나섰다. 모두 중도 탈락했다. 한국인 첫 완주자는 1996년 대회의 김한봉(쌍용차)이다. 개인 자격 및 바이크 부문 출전은 류명걸 프로가 처음이다.
1989년 1월 아프리카 말리에서 다카르 랠리 창설자인 티에리 사빈(40·프랑스)이 탄 헬리콥터가 갑작스러운 모래 폭풍에 휘말려 추락했다. 사빈을 포함해 5명이 사망했다.
1979년 첫 대회 이래 다카르 랠리에서 70여 명이 사망했다. 그 중 28명이 ‘선수’다. 바이크 부문이 19명으로 가장 많다. 이 수치는 공식 발표된 게 아니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바티칸에서 “무책임한 유혈 경주”라고도 했다.
다카르 랠리는 원래 파리~세네갈 코스였다. 그러나 테러, 환경문제로 2008년 대회 하루 직전 갑자기 취소됐다. 이후 남미로 코스를 옮겼다가 이번에 중동으로 넘어갔다. 아시아(몽골)에서 열릴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우디 대회에서는 쌍용차가 3년 연속 참가한다. 외국인 선수가 핸들을 잡는다. 한국의 다카르 랠리 출전은 그동안 차량 부문, 특히 자동차 기업 소속에 한정됐다. 1988년 박정룡(기아차)을 시작으로 1993년 황운기(기아차)가 나섰다. 모두 중도 탈락했다. 한국인 첫 완주자는 1996년 대회의 김한봉(쌍용차)이다. 개인 자격 및 바이크 부문 출전은 류명걸 프로가 처음이다.